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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짐 체인지] <5> 나라살림 블루프린트 다시 그려라

장밋빛 전망 후엔 어김없이 추경… 정확한 경기판단 선행돼야<br>정부 수립 이후 64년 동안 추경 없었던 해는 11번 불과… 연례행사로 본래 의미 퇴색<br>균형재정 달성 얽매이지 말고 보수적 시각으로 경기 전망…<br>예산 편성 내실화에 역점을

지난해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부처별 예산을 조정하고 있다. 장밋빛 경기 전망으로 매년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되는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 보수적인 경기 전망 아래 나라살림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경제 DB


"숫자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내실을 따져야 할 때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균형재정 달성도 좋지만 현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정확한 경기판단이 선행된 예산 편성이라는 것이다.

얼핏 뻔한 지적을 담은 모범답안처럼 들리지만 과거 정권들이 나라살림을 어떻게 꾸렸는지를 되짚어보면 이 같은 지적이 왜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역대 정권은 대체적으로 다음연도 예산을 편성할 때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컸다. 이는 해마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예산을 편성할 당시의 경기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다 보니 실제 예산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경기 상황이 당초 궤도를 벗어나 나빠지면 어김없이 추경을 편성했던 것이다. 주먹구구 살림이다.

통상 학계에서는 성장률이 1% 떨어지면 세수는 2조원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한다. 낙관적 경기전망→예상을 벗어난 경기부진(성장률 하락)→세수부족→추경편성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때문에 정부가 예산편성 시 향후 경기전망을 보수적으로만 잡아도 연말 추경을 반복하는 것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이라도 균형재정 달성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경기 상황을 냉정하게 보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 예산의 역사는 추경의 역사=역대정권의 예산안 편성 역사를 들여다보면 '추경편성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가 수립된 지난 1948년 이후 올해까지 총 64번의 회계연도 중에서 추경이 편성되지 않은 해는 11번에 불과했다. 추경을 짠 53개 연도 중에서 두 번 이상 추경을 편성한 경우도 23차례나 있었다. 한 해 마감을 두 달 정도 앞두고 사실상 '뒷북'을 치듯 추경을 짠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57년 이후 매년 10월 이후 국회에서 추경은 33번에 이른다. 추경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펴는 것이 아닌 사실상 습관화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물론 국회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당시 한나라당 의원) 주도로 2006년 국가재정법을 고쳐 추경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이듬해인 2007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직후인 2010년, 2011년에는 추경 편성이 없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지난 정부 예산 편성 과정을 들여다보면 집중성·한시성·적시성이라는 추경의 본래 성격이 많이 퇴색된 게 사실이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예산을 짤 때 성장률을 낙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그만큼 세수가 많이 들어온다는 것을 전제하는 셈"이라면서 "예산 수립 당시 예측했던 성장률과 실제 경제성장률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면서 세수부족으로 추경을 편성했던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추경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잘못된 경기진단을 바탕으로 예산이 편성되고 결국 추경을 뒤늦게 편성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내년 예산, 보수적 전망 아래 내실 있게 짜야=정부가 매년 예산안 심의를 위해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제안서에는 재정당국이 가지고 있는 경기상황에 대한 인식과 재정운영의 방향이 담겨 있다. 그런데 역대 정부가 내놓은 예산제안서를 보면 경기전망은 대부분 낙관적인 경우가 대다수다. 현 정권만 놓고 보면 총 네 차례의 예산연도 중 정부의 예상 경제성장률을 상회했던 경우는 2010년이 유일하다.

지난해에 올해 예산을 편성했을 때만 해도 5% 성장을 전망했지만 올해 실제 예상성장률은 3.3%까지 떨어졌고 일각에서는 2%대까지 보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3년 만에 또다시 추경 편성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는 굳이 추경을 편성하지 않아도 기존 예산 내에서 각종 여유자금과 예산 이월·불용 예상액 활용 등으로 하반기에 8조5,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어서 사실상 미니 추경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야 등 정치권이 추경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어 자칫 연말 누더기 추경이 편성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다음달 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재정당국의 정확한 경기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2013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보면 정부의 경기인식은 여전히 장밋빛이다. 최근 박 장관이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임을 시사하긴 했지만 얼마나 조정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물론 정부가 비관적으로 볼 경우 투자나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연말마다 되풀이되는 추경 논란을 피하고 내년도 예산을 보다 선제적이고 충분하게 짜기 위해서는 경기전망을 낙관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예산을 편성할 때는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하고 추경을 통해 부족분을 메우는 현 시스템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저성장이 일반화할 경우 보수적인 경기전망 하에 예산을 충분히 편성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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