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 시장에서 회계법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회계법인은 기업의 가치와 재무제표 등 숫자를 면밀히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앞세워 과거 투자은행(IB)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M&A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외국계 IB가 점령한 국내 M&A 시장에서 10위권 내에 2곳이나 이름을 올릴 정도다. 삼일PwC, 삼정KPMG, 딜로이트안진, EY한영 등 4대 회계법인의 재무자문 대표를 만나 각 법인이 지닌 강점과 사업목표, M&A 시장 전망 등을 들어봤다.
삼일회계법인이 올해 M&A(인수·합병) 재무 자문 분야에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종철(56·사진) 삼일회계법인 M&A재무 자문 대표이사는 24일 "M&A 재무자문 분야에서 꾸준한 성장과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이 삼일회계법인의 저력"이라며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국내 '빅4' 회계법인 가운데 M&A 재무자문 매출이 1,000억원을 넘은 곳은 아직 없다. 삼일회계법인이 매출 목표 달성을 하면 첫 사례가 된다.
삼일회계법인의 작년 M&A 재무자문 매출은 860억원이다. 이 대표는 "올해 전년보다 16%가량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삼일회계법인은 지난 1998년 M&A 재무자문 사업을 시작해 9년 만인 2007년 업계 최초로 매출 500억원을 달성한 뒤 조선·금융·건설 분야에서 고른 선전으로 7년 만에 2배 성장을 앞두고 있다.
회계법인의 경우 자신이 감사를 맡고 있는 기업에 대한 재무자문은 금지돼 있어 '반쪽 자리' 시장이라는 한계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는 평가다.
삼일회계법인은 앞으로 신규 사업 영역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우선 한국 기업 인수를 희망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M&A 자문을 강화할 방침이다. 중국 기업들의 자금이 한국에 몰리고 있어 사업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올 상반기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인수한 금액은 6억6,111만달러(5건)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64만달러(3건)에 비해 무려 2,796% 증가했다.
이 대표는 중국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고 있지만 마땅한 매물을 찾지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보고 있다. 그만큼 중국 기업의 잠재적 국내 M&A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중국과 M&A가 활발히 이뤄지려면 기술 유출 등 반중국 기업 정서가 우선 해소돼야 한다"며 "중국 기업은 IT나 자동차 같은 걸 관심을 가지는데 우리나라에서 (기술 유출 등에 대한 우려로) 매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후 경영 정상화보다는 기술만 챙기고 '먹튀' 했다는 인식이 팽배해 중국 자금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에서 매각하려는 기업과 중국이 인수하려는 기업에 대한 매치를 제대로 해줘야 중국 기업의 국내 M&A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삼일회계법인은 중국 기업의 니즈를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지난달 1일부터 중국 기업 인바운드 부서를 신설·운영하고 있다.
중국 변호사 1명을 포함해 40명 정도의 인원으로 꾸렸다. 이 대표는 "중국 담당 부서를 신설한 것은 시장이 어떻게 될 것이냐를 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국 기업 M&A와 관련해 스터디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외에 헬스케어 분야도 이 대표가 눈여겨보는 시장이다. 그는 "제약 산업의 수익성이 굉장히 떨어지고 전 세계적으로 (규제가) 풀리고 있으니까 M&A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병원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 병원의 운영시스템이 뛰어나다"며 "병원운영과 관련된 운영시스템을 수출하는 딜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의사도 새롭게 영입했다.
자동차 부품과 패션 등 중소·중견 기업도 관심이다. 이 대표는 "전국의 지역 히든 챔피언 120곳을 찾아 지금까지 30곳을 방문했다"며 "의류나 자동차 부품 관련 기업 중 M&A에 관심을 보이는 곳의 재무 자문을 적극적으로 맡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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