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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집에서 어린 아이의 유일한 낙은 로봇 만화를 보는 일이었다. 아이는 나중에 과학 분야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꾸며 수학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라디오도 구입해 분해, 조립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애플2를 만난 뒤 컴퓨터 세상에 빠졌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글로벌 게임사를 일군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이야기이다.
세계 시장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공계를 전공한 경영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IoT(사물인터넷)·바이오·신소재·핀테크 등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이공계 출신이 기업 리더가 돼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벤처업계에서는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대세를 이뤘다. 갈수록 ICT를 포함한 고도의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이 커지며 리더 스스로가 이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중소기업청과 창업진흥원에서 분석한 '창업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이공계 출신이 세운 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평균 4.8명으로 인문·상경계(3.0명), 예체능계(2.6명) 출신 기업을 크게 웃돌았다. 이공계 창업자 기업의 연평균 매출액도 10억5,000만원에 달해 인문·상경계(6억3,000만원), 예체능계(2억6,000만원) 출신기업을 앞섰다.
이공계 출신의 벤처 CEO들은 국내 미래먹거리 산업을 좌우하는 단계까지 들어섰다. 각각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산업공학을 수학하고 네이버를 공동으로 설립한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은 현재 한국의 ICT 플랫폼업계를 양분하고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김정주 넥슨 대표는 게임 사업으로 세계시장을 휘젓고 있고,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나온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국내 바이오시밀러 분야에 새 장을 펼쳤다.
창업·벤처업계뿐 아니라 기존 대기업에서도 이공계 출신 전문경영인의 파워가 점차 막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준으로 국내 10대 대기업 상장사 91곳의 CEO 124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43명을 기록, 전체의 34.7%를 기록했다. 경영·경제학과 출신은 42명으로 오히려 이보다 적었다. 실제 삼성전자의 경우 대표이사 3명 모두가 공학도 출신이다. 권오현 대표(서울대 전기공학), 윤부근 대표(한양대 통신공학), 신종균 대표(인하대 전자공학)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나머지 1,200여 명의 임원 중 상당수도 이공계를 나왔다. 현대자동차는 아예 오너인 정몽구 회장부터 한양대 공대를 졸업했다. 정 회장은 자동차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R&D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어 2000년 계열분리 당시 세계 10위였던 현대차를 5위까지 끌어올렸다.
채수연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차장은 "ICT기업이다 보니 현장 기술이해도가 높은 이공계 출신 임원이 아무래도 제품 개발·영업·마케팅 등에도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R&D와 투자규모가 커지면서 이공계 리더가 자연스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더 많은 유능한 미래 리더를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과학에 흥미를 느끼게끔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택진 대표는 물론 1980년대초부터 컴퓨터 체험시설을 쓰기 위해 교보문고를 자주 들락거렸던 김정주 넥슨 대표처럼 최근 성공한 경영인들은 독특한 과학기술 체험과 교육을 받은 이가 많다. 조성현 창업진흥원 조사연구팀장은 "기술인력인 이공계 CEO가 세운 벤처·창업기업은 다른 전공보다 일자리 창출 능력이 좋고 매출도 2~4배를 거둘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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