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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문건 파동의 피의자
입력1999-11-01 00:00:00
수정
1999.11.01 00:00:00
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때 안기부에 끌려간 적이 있다. 신문 1면 톱으로 특종 보도한<학원안정법안>이 문제가 된 것이다. 하룻밤 조사를 받는 동안에 이 보도를 문제 삼은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았다.당시(1985년) 사회는 대학가의 격렬한 데모가 연일 계속되던 때였다. 여당은 시국안정의 명분을 내세워 은밀히 이 법안을 작성중에 있었다. 비밀작업중인 법안이 사전에 보도됨으로써 학원가를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보도책임자를 조사한다는 것이 겉으로 내건 명분이었다.
그러나 실은 여당내의 헤게머니 쟁탈전이 본질이었다. 신문사 간부와 기자들까지 연행해 문건 출처를 대라고 했지만 내막은 어떤 답안을 유도하고 있었다. 여당 내 「비둘기파」보스로 지목되고 있는 L의원이 문건 유출의 소스라는 답안이다.
당시 시국문제를 둘러싸고 집권측은 매파와 비둘기파로 갈려 치열한 암투가 계속되고 있었던 터여서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자료로 신문보도 문제를 이용한 것이다. 비둘기파가 언론과 내통, 안건을 흘림으로써 매파의 강공책을 꺾고 여당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고 몰아붙이자는 의도였다. 비둘기와 매의 싸움 깊은 곳에는 「후계자」문제까지 연계돼 있었다.
요즘 한 신문을 둘러싸고 권력과 언론이 미묘한 관계로 흐르고 있다. 급기야는 한 문건이 흘러 파장을 더욱 확대 재생산시키고 있다. 더욱이 그 문건 작성자가 해당 신문의 휴직중인 기자이며 야당쪽의 폭로자나 여당쪽의 관련자가 전직 안기부 고위직 출신이라는 점에서 도대체 이 사건의 사실관계부터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사실관계야 꿰어 맞추면 밝혀지겠지만 이 사건이 사회진화에 기여하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사태와 사건의 진실과 본질은 젖혀두고 이해집단의 아전인수식 해석과 호도가 눈을 가리게 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그렇다.
사태와 사건은 흐름을 만들어 내게 되고 사회는 그에 대한 답을 요구하게 된다. 진실과 본질을 찾아 해답을 만들어 내면 사회는 진화한다. 그런데 우리는 표피적 문제를 놓고 들끓다가 답을 잃어버린다. 오죽하면 냄비체질이라고 할까. 딱 하나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이 사건의 사회적 표적이자 피고는 정치가 아니다. 파동의 본질은 바로 ‘한국의 언론, 과연 무엇인가’다. 언론이라도스스로 진화하는 이벤트로 흐름을 잡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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