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벼슬에 오른 이차돈은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이였다. 불교에 귀의한 그는 불교 공인을 주장하며 현세의 영화를 버리고 목숨을 던졌다. 한국 불교사상 최초의 순교 사건이었다. 이차돈은 굳은 신념을 가진 종교인인 동시에 불교를 국교로 세워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법흥왕의 의지를 뒷받침해 준 충신이었다. 이차돈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경주시 동천동에 '자추사'가 세워졌고 지금은 같은 자리에 '백률사'가 자리잡고 있다. 목이 잘린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돌에 새긴 '이차돈순교공양석당'(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이 옛 자추사에서 출토됐다. 이로부터 시작된 한국불교 1,600년사는 명망 높은 고승과 유서 깊은 명찰로 더욱 빛을 발했다. 역사연구가인 저자는 이 중 32명의 고승을 엄선해 그 일생을 추적하며 불교 역사를 되짚었다. 이차돈이 고귀한 순교로 신라 불교의 새벽을 열었다면 원효대사는 서민 불교의 새 길을 닦은 선구자였다. 호국불교, 귀족불교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원효는 낮은 곳으로 불심을 끌어내렸다. 출가한 원효대사가 수도했던 황룡사, 수많은 저서를 집필한 분황사를 비롯해 당나라 유학길,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책에 담겼다. 이들 외에도 김대성 거사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세워 신라불교의 황금시대를 이룩했고 백제가 망한 뒤에는 진표율사가 유민들을 위로했다. 종파 갈등이 극심했던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와 보조국사가 불교 통합을 위해 애썼고 억불숭유의 조선시대에도 서산ㆍ사명ㆍ진묵대사 등이 호국에 앞장섰다. 저자는 "32명의 주인공들은 걸출한 불교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난세와 암흑기에 우리의 시대정신을 이끌어 준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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