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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장관의 令이 안 서는 이유

현직 모 장관이 취임한 직후였다. 산하 모 공기업 기관장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함부로 나대지 마라. 다시 그런 모습이 보이면 가만히 안 있겠다"는 따끔한 경고를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 기관장은 민간출신으로 청와대의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말이 많았던 터였다. 청와대 인사입김 갈수록 세져 얼마 전 불발로 끝난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생각하면 지금도 참 희한하다. 우리금융지주는 막대한 공적자금이 들어간 정부 소유 은행이다. 그런데 그 은행을 민영화하겠다고 하니 매각 대상인 우리금융지주의 경영진과 직원들이 스스로를 사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유력한 경쟁자였던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로 방향을 틀어 경쟁대열에서 빠짐으로써 사실상 유일한 인수후보자가 되자 정부에 인수가격을 낮춰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정부가 그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자 결국 인수전 불참을 선언, 스스로 판을 깨 버렸다. 이 과정에서 해당부처의 장관은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유효 경쟁구도 성립이라는 당국의 매각 원칙에 정부 소유 은행의 경영진과 직원들이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는데도 말이다. 장관들의 영(令)이 안 서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갈수록 그런 상황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국제회의에 취재를 가면 참석한 기관장들이 출장 온 기자단에게 밥을 사는 관행이 있다. 그런데 그 밥 사는 순서가 바로 '힘'을 나타낸다. 관련해서 기자들 사이에 하는 농담이 있다. 금융관련 국제회의에 가면 금융위원장의 순서가 4~5번째로 밀릴 것이라는 얘기다. 여러 금융지주 회장들이 돌아가며 밥을 산 뒤 다음으로 금융위원장 순서가 올 것이란 얘기다.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처 공무원들이나 산하조직에 대한 장관의 인사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한 전직 관료는 "장관들이 가장 힘이 있던 때가 아마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당시는 차관 이하 공무원과 산하조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관들이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청와대의 인사개입은 갈수록 커졌고 반대로 장관의 인사권은 작아져만 갔다. 청와대의 인사개입 수준과 관련해 '전두환 정부에서는 차관까지, 노태우 정부에서는 국장선까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는 과장까지, 그리고 MB정부에서는 사무관까지' 라는 말조차 나오고 있다. 이를 산하조직에 빗대보면 MB 정부 들어서는 산하 공기업의 자회사의 자회사에 있는 사외이사 자리까지 청와대에서 챙긴다는 얘기다. 장관들의 영(令)이 안 서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산하 기관장의 경우, 장관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았고, 자신도 사실상 청와대로부터 낙점받아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장관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셈이다. 산하 기관장 뿐만이 아니다. 아주 작은 공공기관의 사외이사라도 그렇다. 인사권 줄어든 장관은 힘 빠져 이 같은 공무원 또는 공공부문 인사의 '정치화'는 관료사회의 극심한 눈치보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인 4년차를 맞아 새해부터 관료들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이 대통령 남은 임기 내에 뭔가 자리를 차지하고자 일을 도모하려 해도 왠지 찜찜하다. 차기 정권에서도 이 같은 인사의 정치화는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MB정부도 한 몫 했다. MB 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각종 인사에서 피아(彼我)를 확실히 구분했다. 한나라당내 이명박계, 그리고 영포(포항ㆍ영덕) 라인, 또 이른바 고소영 라인은 '우리들(我)'이었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 계열뿐 아니라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 고위직을 보낸 관료들은 철저히 '그들(彼)'이었다. 한나라당내 박근혜 계 역시 '아' 보다는 '피'쪽에 가까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1년여가 지난 뒤 업무성과가 훌륭한 장관들에게는 인사권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간접적으로 장관들의 미약한 인사권을 인정하는 언급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통령이 주겠다는 인사권을 받은 장관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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