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소비부진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장기침체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까지 나온다. 일본의 가계들이 소비 대신 저축을 선택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가계저축률도 부진하니 소비부진의 원인을 단순히 '불확실한 미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을 것 같다. 한 연구기관은 40대와 60대의 소비부진이 유독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필자는 그 이유가 최근 전셋값 상승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노년층도 자녀 보증금 지원에 허덕
우선 40대의 소비부진은 자녀교육과 관련된 비용 부담 탓으로 조사됐다. 사교육비가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학군 좋은 지역의 전세아파트는 그야말로 '억대'를 줘야 한다.
하지만 60대의 소비부진은 언뜻 이해가 안 간다. 연령이 높을수록 자가보유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60대가 전세 가격 상승 때문에 소비수준을 낮췄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50~60대들의 자가거주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은 이들도 전세가 상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니냐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자기 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들은 왜 남의 집에 전세로 거주하는 걸까. 금융기관의 PB나 중개업소를 통해 60대 이상의 부부들이 그들 자녀들의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느라 고충이 심하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부모 소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을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의 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세로 빌려주고 자신들은 그보다 보증금이 싼 전세주택으로 이주해 그 차액을 자녀들에게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집을 갖고도 불안한 전세주택을 전전긍긍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소비도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금융기관들의 전세대출잔액은 약 2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부모세대들이 자녀들에게 제공한 전세지원금까지 합한다면 아마 전세대출금의 규모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어날 것이다.
막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들의 한숨은 더 깊어진다. 이들의 자녀는 이제 한창 취업전선으로 나가고 있다. 따라서 머지않아 결혼 적령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월세 활성화로 소비여력 키워야
지금까지는 결혼을 미루는 자녀들 때문에 부모들이 마음고생을 한다는 푸념이 있었지만 요즘 같아서는 자녀들의 결혼이 더 큰 근심이 될 것 같다. 신혼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부모의 도움 여부가 자녀들의 주택시장 진입의 출발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월세가 보편화된 외국에서는 2개월치 월세만큼의 보증금만 내면 쉽게 임대주택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월세보증금마저도 월세의 30배 이상으로 부담이 크다. 세입자가 되기 위해서도 '목돈'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외국과 같은 월세제도가 보편화돼 부모들이 월세 2개월치 정도의 보증금만을 결혼 준비금으로 지원해주는 '미래'를 그려본다. 매달 지불할 월세는 자녀들의 소득으로 감당하면 된다. 바람직한 미래 임대시장의 밑그림은 이렇게 노년층이 자녀결혼을 앞두고 전세보증금 마련에 한숨을 쉬지 않은 그런 상황이 아닐까. 새해가 돼도 그칠 줄 모르는 전세가 상승을 보면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애환과 고뇌가 느껴져 마음이 무겁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