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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홍콩 누아르와 유커-양창훈 현대아이파크몰 대표


트렌치코트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마른 성냥개비를 질겅거려 본 기억이 있는가. 수많은 평범남들을 일순간에 성냥개비를 문 건달로 만들었던 희대의 아이콘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홍콩 영화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우위썬(吳宇森·오우삼)과 쉬커(徐克·서극) 감독으로 대표되는 홍콩의 갱스터와 무협·액션 영화들은 '홍콩 누아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며 극장가와 안방을 사로잡았다.

홍콩 영화의 인기는 오락적인 요인도 컸지만 그에 더해 동양적 가치관이 우리 정서와 잘 맞았고 무엇보다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났다. 또한 홍콩은 영화의 인기와 세계적인 쇼핑 수요가 맞물리면서 관광지로도 이름을 날렸다. "홍콩에 다녀왔다"고 하면 "저 친구 돈 좀 있는 모양이네"하며 우러러볼 정도였으니 홍콩은 영화처럼 꾀나 폼 나는 도시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홍콩 영화는 식상한 소재의 판에 박은 영화들을 무분별하게 찍어내면서 명성과 인기를 급격히 상실했다. 2000년대 들어 '무간도'와 같은 훌륭한 영화들이 간혹 나오기는 했지만 과거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달 춘제(春節·설) 연휴 기간 중 홍콩을 찾은 중국 관광객이 20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갔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반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는 10만명 넘는 유커가 싹쓸이 식 쇼핑을 했고 이들의 '통큰 쇼핑'은 세간에도 화제가 됐다. 홍콩은 이제 문화적 영향력뿐만 아니라 쇼핑·관광에서도 우리나라에 뒤처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홍콩뿐 아니라 일본의 사례까지 한번 생각해보자. 과거 일본에 가면 '코끼리 밥솥'을 꼭 사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코끼리 밥솥을 사러 일본에 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상품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생각해보면 십수년 내 중국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쇼핑 시설이 갖춰질 것이고 자국 상품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굳이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쇼핑 관광을 올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반짝 인기와 쇼핑에만 기댄 관광객 유치는 홍콩 누아르의 '영화(榮華)'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실제로 상당수 중국 관광객들이 벌써 "한국에 오면 쇼핑 외에는 할 것과 갈 곳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런 면에서 지역 관광지인 경기도 파주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파주에는 헤이리 마을과 같은 문화·예술 공간뿐 아니라 대형 아웃렛도 있어 관광과 쇼핑을 한 번에 즐기는 코스로 뜨고 있다. 유커의 취향이 '단체'에서 '개별'로, '명동'과 같은 대형상권에서 이야기가 있는 '지역'으로, '명소'에서 '숨은 맛집'으로, '싹쓸이'에서 '실속'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체들도 이 같은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유커들이 항상 관광버스에서 줄줄이 내리고 매장에 넘쳐 날 것이라는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면세점과 백화점도 독립된 관광 명소처럼 저마다의 독특한 테마와 즐길거리를 지녀야 한다. 변화하는 유커는 유통업계의 새로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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