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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명성황후 시해범은 낭인이 아니었다"

■ 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이종각 지음, 메디치 펴냄


"살해당한 부녀 중 한 명은 왕비라고 하는바, 이를 살해한 자는 우리 수비대의 어느 육군소위로서...."

을미사변 당일. 우치다 영사가 하라 다카시 외무차관에게 보낸 비밀 서한에 담긴 내용이다. 이 서한에는 을미사변에 대한 간략한 개요가 담겨 있었다.

사변 당일 사건의 과정을 전해 들은 우치다가 시해범의 정체를 파악하고, 곧바로 상부에 보고한 것이다.

'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는 을미사변 연구의 난제인 '명성황후 살해범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하는 책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군대와 낭인들이 경북궁 담을 넘어 들어가 왕비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불태웠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범인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당시 여러 증언자의 기록과 일본외교 문서 등을 종합할 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1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범인의 정체에 대해선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저자는 황후 시해범이 낭인이라는 통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을미사변은 일본정부의 군사 작전이었고, 그 범인 역시 군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치다 사다쓰치 주한영사가 본국에 있는 하라 다카시 외무차관에게 보낸 개인 서신, 그밖에 관련 자료를 검토한 끝에 명성황후를 살해한 이는 경성수비대 소속의 미야모토 다케타로 소위라고 말한다.

청일전쟁 후 동아시아 패권을 다투던 일본 제국 정부가, 왕비 살해라는 막중한 임무를 깡패와 다름없는 낭인패들에게 맡겼을 리 없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경성수비대에는 4명의 소위가 있었다. 그중 다케나가 소위는 경복궁 경비를 서고 있었고, 미야모토를 제외한 두 명의 소위는 당일 기록이 없다. 유일하게 왕비 살해 현장에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는 인물이 미야모토 소위이다.

을미사변 직후, 사건에 참여했던 경성수비대 군 지휘관들이 히로시마 헌병대에 수감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군 장교와 낭인의 입을 통해 미야모토 소위가 마키 특무조장과 함께 왕비 살해 현장에 있었다는 증언도 반복해서 나온다.

저자는 "명성황후 시해범이 민간인 신분의 일본 낭인인 경우와 일본 군인인 경우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며 "주한 일본공사의 지휘를 받아 동원된 일본군 부대에 소속된 군인, 그것도 장교가 시해범일 경우 당시 일본 정부의 법적·외교적 책임은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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