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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 박근혜와 장호권, 역사의 하중

부당한 죽음과 불행한 죽음<br>서로 다른 의미 던져줘<br>박근혜의 국민통합 진정성<br>의문사 진실 밝혀야 판가름


사망 37주기를 맞은 장준하선생의 유골에서 타살 흔적이 발견됨으로써 다시금 박정희와 장준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사상계를 통해 민족정론에 앞장선 광복군 출신 장준하와 유신을 통해 장기집권을 꾀한 일본군 출신 박정희의 생애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러기에 '그대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가사처럼 비록 '칼'을 쥔 박정희지만 '펜'을 지닌 장준하는 그에게 엄청난 부담을 줬을 것이다.

여기서 박정희의 딸과 장준하의 아들, 바로 박근혜와 장호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유력한 대선주자고 다른 사람은 무명의 시정필부다. 박근혜는 전직대통령의 딸로 우리 사회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사람이고 장호권은 반독재투사의 아들로 오랜 망명생활에 지친 사람이다.

얄궂은 속세의 인연을 지고 있는 박근혜와 장호권이지만 두 사람은 무거운 역사의 하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장호권이 유신시대의 어둠을 거둬 내고 싶어하지만 박근혜는 그 어둠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장준하와 박정희의 죽음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의(義)와 불의(不義)로 갈리지만 '비정상적 죽음'임에 틀림없다. 피살이라는 비명(非命)에 의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장준하의 죽음이 부당하고 억울한 죽음이라면 박정희의 죽음은 외롭고 불행한 죽음이라 할 수 있다. 독재권력에 맞서다가 운명을 달리 한 장준하, 민주주의를 짓누르다 살해당한 박정희는 서로 다른 죽음의 의미를 던져준다.

박정희에게 장준하는 감히 넘어서기 어려운 거목이었다.

그 나름대로 역사를 꿰뚫어보려 한 박정희는 학병을 탈출해 상해 임시정부의 광복군에 합류하고 해방 이후 사상계를 창간해 국민계몽에 앞장선, 장준하를 불편한 존재로 느꼈을 것이다.



관동군에 근무 중 일본 육사에 발탁돼 졸업 후 만군에서 복무하고 두 번이나 창씨개명을 하고 해방 후 국군에 가담하나 남로당 비밀당원으로 체포돼 전향후 사면을 받고 5ㆍ16군사쿠데타를 주도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10월 유신을 통해 일인통치 기반을 만드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박정희로서 독립운동과 민주투쟁이라는 올곧은 길을 걸어온 장준하에 대해 자격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처지는 다르지만 천명(天命)을 다하지 못한 아버지를 둔 박근혜와 장호권은 모두 한(恨)ㆍ원(怨)ㆍ애(哀)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박근혜는 가해자 쪽이고 장호권은 피해자 쪽이다. 그러나 이제 가해와 피해를 넘어 역사의 화해로 나아가기 위해 두 사람은 모두 역사의 하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서로의 원망을 풀고 동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최선이다.

최근 박근혜는 5ㆍ16쿠데타와 유신이 헌법가치를 훼손한 것이라고 자인했다.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지난번 발언에 비해 한걸음 더 나아갔다.

역사 앞에 정죄함이 없이 후세의 판단에 맡기자는 얘기는 현대사의 과오를 감추려는 기만적 수사에 다름 아니다. 인혁당 피해자들이 확정 판결 후 바로 사형에 처해졌고 장준하의 죽음 후 그의 가족이 오랫동안 감시와 통제를 받고 지냈다는 사실은 무엇을 얘기하는가. 절대권력의 음모와 공작이 숨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민통합을 강조하는 박근혜의 진정성은 장준하의 의문사를 제대로 밝힘으로써 판가름 날 수 있다. 민주통합당처럼 새누리당도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를 가동하고 그것을 국회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재조사하는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현대사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선취적 노력을 보일 때 박근혜는 버거운 역사의 하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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