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어제 치른 수능시험의 가채점 결과를 적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학생들의 대화 내용은 '최저학력 기준도 못 맞추면 어쩌냐' '생각보다 더 망했다' 등 우울한 내용들 일색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영어 B형이었다.
강모(18)양은 "영어 B형의 경우 빈칸 채우기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며 "평소 나오던 등급보다 2등급은 떨어질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모(18)양도 "영어 B형의 지문이 너무 길어서 평소보다 시간이 부족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난도가 낮은 국어 A형이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주연(18)양은 "듣기가 없어져서 시간은 부족하지 않았다"면서도 "CD 드라이브의 작동원리를 묻는 비문학 지문이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도 "비문학과 수필이 너무 어려워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고 말했다.
과학탐구영역이 어려웠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김모(18)양은 "화학Ⅰ과 생물Ⅱ에 응시했는데 화학Ⅰ이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고 최서경(18)양도 "화학Ⅰ이 너무 어려워 점수가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평소 화학Ⅰ을 만점 받는 학생도 수능에서 몇 문제 틀려 간신히 1등급을 받을 것 같다"며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형 수능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최모양은 "이과의 경우 수학과 영어는 B형을 응시했기 때문에 국어는 A형을 봐야만 한다. 하지만 이과라고 해서 국어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식으로 구분을 지었는지 모르겠다"며 "선택형 수능으로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문인지 학생들에게서는 수능으로부터 해방됐다는 여유로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혜원(18)양은 "어제는 친구들과 안양천을 걸으면서 놀았고 오랜만에 잠도 푹 잤다"면서도 "당장 내일부터 수시지원한 대학의 시험을 봐야 하고 다음주에는 기말고사를 치러야 해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강현비(18)양도 "2년간 만든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고 싶다"면서도 "수시지원한 대학의 적성고사를 준비하느라 그마저도 실천할 형편이 안 돼 아쉽다"고 말했다. 강양의 버킷리스트는 놀이공원 가기와 기타 연주법 배우기, 스탠딩 콘서트 가기, 친한 친구와 여행 가기 등 소박한 소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난감해 하는 것은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이 반의 담임이자 입시전략부장인 박성현(40) 목동고 교사는 "주로 기존 입시자료를 가지고 대입지도를 하는데 선택형 수능으로 그러기가 어려워졌다"며 "대학별로 B형에 대한 가중치를 다르게 주는 등 변수가 많아져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큰 문제는 상위등급에 속할 인원이 줄어든 것"이라며 "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과목별 1등급 부여 비율은 4%에 불과한데 이 인원이 A형과 B형 선택으로 나뉜데다 상위권 학생들은 B형을 반드시 응시해야 해 이들의 타격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영어의 경우 B형을 지정한 대학이 117곳인 반면 A형을 지정한 대학은 8곳에 불과하다. 특히 주요 상위권 대학의 경우 B형을 의무화하고 있다. 상위권 학생들이 경쟁이 치열한 B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AㆍB형으로 나뉘지 않았다면 거뜬히 1등급을 받았을 학생들이 모두 B형을 선택해 일부는 2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며 "상위권 학생들이 선택형 수능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된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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