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조선회사인 대우조선해양. 지금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품 안에 있지만 대우조선은 여전히 우리 조선산업의 자존심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조선 경기 불황의 파고는 대우조선까지 덮쳤다. 지난 1·4분기에는 4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지난 2006년 3·4분기 이후 34분기 만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2·4분기에도 해양플랜트 부문 손실이 대거 반영돼 적자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경영진 선임에 진통이 이어지면서 리더십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만큼 대우조선은 지금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이고 긴축 고삐를 최대한 죄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상황도 노조에는 큰 변수가 되지 않는 듯하다.
대우조선해양의 노동조합이 올해 임금·단체협약을 앞두고 파업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대우조선은 지난해까지 24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웠다. 그만큼 노사 간 신뢰가 두터워 실제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어려운 회사 사정을 잘 알면서도 '파업'이라는 협상 카드를 들고 강경히 나서는 노조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대우조선노조는 7일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에서 노조원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올해 단협 보고대회와 총파업 출정식을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노조는 1~2일 임금협상 관련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노조원 96%가 파업에 찬성했고 이날로 쟁의행위 조정기간이 끝남에 따라 합법적인 파업 조건을 갖췄다. 노조는 현재 진행 중인 사측과의 임금과 단협에 대한 협상에서 파업권을 무기로 삼을 예정이다.
특히 이번 협상에는 임금인상률 외에 약 200억원가량인 통상임금 소급분의 지급 시기도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연월차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노사는 3월 1인당 300만원가량의 소급분 지급에 합의했다. 지급일시는 7일이다.
그러나 지난 1·4분기에 이어 2·4분기에도 적자가 커지자 회사 측은 지급 일시를 미룰 것을 제안했다.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기존 합의 사항도 지켜지지 않는데 현재 협상이 원만히 되겠느냐"며 "회사와 대주주인 산업은행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파업까지 포함한 대응 방안을 조만간 확정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당혹스러움이 가득하다. 대우조선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현금 흐름이 좋지 않아 (소급분) 지급 기일을 늦추자고 말한 것이지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며 "노조도 회사가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업계에서는 이번 갈등이 실제적인 대규모 장기간 파업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까지 24년 연속 큰 분쟁 없이 노사 협상이 마무리됐고 갈등의 발단이 된 금액(200억원)도 회사의 지난해 매출(약 15조원, 단독기준) 규모를 고려하면 크지 않다. 또 소급분 지급 시기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상당 부분 노사 간 공감대가 형성돼 회사 전체가 2주간 여름휴가에 돌입하는 오는 27일 전까지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올해 적자가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까지 거론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회사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이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해양 부문에서 상당한 손실이 확인됐다"고 직접 밝힐 정도로 대우조선의 2·4분기 적자 확대는 기정사실로 하는 모양새다. 특히 회복 시기가 내년 상반기 이후로 점쳐져 올 하반기 실적 개선도 불투명하다. 국가부도 상태에 빠진 그리스 사태의 파장이 유럽과 전 세계로 퍼질 경우 선박 발주 시장도 위축될 수 있다. 최근 중국의 한 선사가 대우조선에 3억2,000만달러 규모의 가스선을 발주하려다 자금 부족으로 취소한 사실도 이날 알려지는 등 조선업황은 여전히 험로를 걷는 상태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 사장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대우조선이 손실을 보면서까지 같은 대주주 밑의 STX조선해양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노조가 우려하는 부분은 크게 해소됐다"며 "노조가 파업까지 내걸며 회사를 압박하기보다는 사측과 함께 위기 극복에 동참하는 자세를 보일 때"라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