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부동산시장 안정 차원에서 지난해 말 단행한 지급준비율 인상의 불똥이 투신ㆍ증권사에까지 튀고 있다. 지준율 인상 후 준비금을 맞추기 위한 은행들의 ‘돈 끌어모으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투신권의 법인자금 가운데 상당수가 은행권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18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지준율 인상이 발표된 지난해 11월 말 이후 3개월여 동안 증권사 등이 기업에 판매해온 채권형펀드와 법인MMF 수탁고는 8조원 이상 급감했다. 특히 채권형펀드의 경우 전체 설정액이 지난해 11월 말 52조2,000억원에서 올 2월 말 현재 46조1,000억원으로 6조원 이상 줄었다. 3개월ㆍ6개월ㆍ1년 단위로 설정되는 채권형펀드는 대부분 기업의 단기성 여유자금으로 채워지고 있다. 또 수시입출금식 법인MMF 설정잔액은 같은 기간 18조6,000억원에서 16조4,000억원으로 2조원 이상 빠져나갔다. 반면 은행권 수신액은 630조원에서 647조원으로 3개월 동안 17조원이나 늘었다. 특히 지준율 인상이 반영된 첫 달인 지난해 12월에는 법인MMF의 대체제 성격을 지닌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잔액이 전월 대비 3조원 이상 늘었다. 또 최근에는 법인과 소수의 고액자산가를 위한 고금리 특판예금 상품이 포함된 정기예금이 2조8,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투신권 자금의 유출은 시중 과잉유동성을 줄이기 위한 지준율 인상 이후 은행권이 부족한 자금을 메우려고 고금리경쟁을 벌이면서 금리에 민감한 법인자금이 은행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강창주 대한투자증권 법인영업본부장은 “개인자금과 달리 법인자금은 작은 금리차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MMDA 금리가 투신권 MMF에 육박한 상황인데다 연 6~7%에 달하는 고금리 특판예금까지 쏟아지면서 법인자금 이동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투신권에서 은행권으로의 자금이동이 뭉칫돈의 부동화를 심화시킬 경우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회복이나 부동산 가격 재상승 등으로 새로운 투자처가 마련될 경우 은행권에 몰렸던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과다한 유동성 축소만큼이나 시중자금이 여러 투자처로 분산되는 것도 중요하다”며 “단기간 내 은행권에 쌓인 자금은 마찬가지로 짧은 시간에 시중에 한꺼번에 풀릴 가능성도 있어 또 다른 과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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