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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엔진 식어가는 ㈜대한민국

상장사 매출·영업익·순익↓… 엔저 등 변수에 경쟁력 밀려

"과거 中 특수를 제 실력으로 착각… 혁신않고 안주한 기업 민낯 드러나"

애플·도요타 등 경쟁기업은 유례없는 호황에 '함박웃음'

올 실적 전망도 밝지 않아 기업가 정신·선제 투자 절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지난해 상장기업들의 매출액·영업이익·순이익이 모두 전년에 비해 뒷걸음질친 것이다. 특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대기업들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엔고 덕분에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체질개선 노력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결과 엔저 등으로 대외환경이 급변하자 해외 주요 경쟁기업과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일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협의회가 발표한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 연결기준 실적자료에 따르면 496개 상장사의 지난해 매출은 총 1,821조원으로 전년 대비 0.4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2.69% 줄어든 91조원에 그쳤고 당기순이익도 6.96% 감소한 61조원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005930)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은 206조2,059억원으로 전년보다 9.3%, 영업이익은 25조250억원으로 31.97% 감소했다. 순이익도 23조3,943억원으로 23.23% 줄었다.

전체 상장법인 매출의 11.3%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를 제외할 경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매출은 0.9% 늘어난 1,615조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사실상 정체상태나 다름없었다. 영업이익 역시 2.3% 떨어진 66조원에 머물며 여전히 뒷걸음질쳤다.

기업들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5.02%로 전년 대비 0.7%포인트 감소했고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도 0.24%포인트 낮아진 3.36%에 그쳤다. 장세진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뚜렷한 자체 경쟁력이 부족하고 국제화되지 않은 기업일수록 환율 등 외부 변수의 영향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정체에서 벗어나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현지생산 비중 확대 등을 통한 해외사업 다각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잇따른 대내외 악재에 부딪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동안 글로벌 경쟁 기업들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애플은 스마트폰 신제품 '아이폰6'의 판매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10~12월 단 3개월간 242억4,600만달러(약 26조6,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벌어들이며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1년간 벌어들인 영업이익(25조251억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러한 성장세를 타고 애플의 시가총액도 향후 1년 내 1조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209조6,070억원(1일 종가 기준)과 비교해 5배나 많다.

이웃 나라 일본의 대표기업 도요타도 '엔저'를 등에 업고 부활에 성공했다. 도요타의 2014년 회계연도 영업이익(2014년 4월~2015년 3월)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2조7,000억엔으로 점쳐지며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이 확실시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일본 기업 사상 최초로 영업이익 3조엔 시대 개막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요타의 영업이익률은 9.5%로 지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현대차(005380)(8.5%)를 1%포인트 차로 제쳤다. 기아차 역시 5년 만에 일본 혼다에 영업이익률을 추월당했다.



국내 기업들이 좀처럼 실적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혁신 부재'를 꼽고 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우리 수출기업들도 환율 덕을 많이 봤지만 이제는 환율도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라며 "중국 특수로 돈을 번 기업들이 신기술 개발에 몰두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 결과가 지금의 실적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그동안 삼성전자의 실적호조에 가려져 있던 국내 상장사들의 뒤처진 경쟁력이 이제 하나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전망도 썩 밝지 않다. 증시전문가들은 대체로 우리 기업들의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에 비해 10% 안팎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 등에 따른 기저효과, 정부의 경기부양, 초저금리에 따른 금융비용 감소, 유럽 등 글로벌 경기의 소폭 호전 등을 근거로 한 것이다. 만약 과거에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10%보다는 훨씬 더 큰 이익증가 폭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키워드 역시 '혁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혁신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이 제조업 중심의 기존 질서에 익숙해져 새로운 생태계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며 "중국 등 신흥국과의 격차를 다시금 벌리려면 애플의 성공 사례처럼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업들이 혁신과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 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이 혁신에 나서기 어려운 각종 정부 정책을 조정하는 등의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며 "기업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구조조정이 끝나면 새로운 혁신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윤 전경련 미래산업팀장은 "정부는 기업이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우수 인재 영입에 나설 수 있게끔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며 "기업들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기업가정신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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