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이대로 쉬어야만 한다니 답답할 뿐입니다."
올해 초 국내 중견 정보기술(IT)업체 임원을 지내고 퇴직한 최모씨는 요즘 한숨이 부쩍 늘었다. 후배들을 위해 선뜻 용퇴를 결정했지만 아직까지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최씨는 수준급의 외국어 실력에 소프트웨어 자격증까지 여러 개 갖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를 경험해보겠다는 당초 기대는 사라지고 냉혹한 현실만 체감하는 중이다.
최씨의 소망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 그 자체다. 임원 수준의 처우나 팀장급 등의 직책은 바라지도 않는다. 최씨는 "일단 올해까지는 구직 활동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라며 "남은 삶을 봉사하며 보내고 싶었는데 이대로 썩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취업을 고민하는 최씨와 달리 요즘 우리 사회에는 고졸 채용이 연일 화제다. 시중은행들이 고졸 사원을 행원으로 채용하자 삼성전자가 그룹 차원에서 고졸 공채를 신설했고 LG전자는 기능직의 76%를 고졸로 채우겠다고 나섰다. 최근에는 공기업도 고졸 인력을 별도로 선발하겠다고 나서는 등 고졸 채용은 이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채용 문턱이 낮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열린 채용은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구조적인 병폐를 씻는 가장 일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채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은퇴 정책이다. '좋은 은퇴'가 마련돼야 '좋은 채용'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어느 업계에서나 화두지만 IT 업계는 유독 상황이 심각하다. 은퇴 연령이 낮은 데다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도 제한적이라는 게 걸림돌이다. 가장 부가가치를 많이 내는 게임 업계는 평균 연령이 30대에 불과하다.
정부도 그동안 IT산업의 규제에만 급급한 나머지 IT 인력에 대한 지원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IT 은퇴자만 제대로 활용해도 IT산업의 경쟁력은 물론 사회적 효용을 크게 늘릴 수 있다. 머지않아 다가올 IT 인력 대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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