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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27.교통사고(1)
입력2003-05-29 00:00:00
수정
2003.05.29 00:00:00
최원정 기자
어려서부터 나는 기계나 도구를 다루는 일에 관심이 많아 나도 모르게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도 1년 가까이 운전학원에 가지 않았던 것도 일이 바쁜 것 보다는 내심 `운전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한 탓이다.
당시 출판사에 근무했던 기사는 저녁이 되면 차를 우리집 앞에 주차해 놓고 퇴근했다가 다음날 나를 태우고 출근을 했다. 따라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나 혼자 운전연습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경험부족으로 이리저리 차량을 손상 받기도 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듬해 여름이 될 때까지 실기시험을 치루지 못했지만 차를 운전하는 일은 눈에 띄게 많아졌다.
1979년 7월6일 그 날도 퇴근시간이 되어 기사에게는 먼저 들어가라 하고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아리 쪽에 급한 일이 생겨 운전을 하게 되었다. 돌아올 때는 어느덧 밤12시 통금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가볍게 술을 한잔 한 후 망설임 없이 운전대를 잡았고 다른 몇 명도 동승을 시켰다.
미아리에서 돈암동을 지나 삼선교를 거쳐 혜화동 로터리 고가를 지나고 있었다. 밤이 늦어 오고 가는 차량도 많지 않아 나도 모르게 속력을 내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왕복 2차선 오르막 고가로 접어들자 갑자기 짚차 한 대가 정지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급제동을 해도 충돌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반대 차선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 순간 번쩍 하는 불빛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차 주위로 사람들의 웅성거리고 있었고 전조등을 밝힌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겨우 운전석에서 빠져 나와 보니 바로 옆에 무참히 일그러진 택시가 눈에 들어왔다. 반대편 오르막을 올라와 내 차와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었다. 통금시간이 임박해서 종로에서 의정부로 달리던 `총알택시`였는데 반대편 오르막을 올라오면서 나와 마찬가지로 바로 앞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새 왔는지 경찰이 현장파악을 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허둥지둥 교통경찰을 도와 차에서 부상자들을 꺼내 구급차에 싣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때는 혜화병원(고대 안암병원) 응급실이었다. 다른 부상자들 역시 눈에 띄었다. 다행히 나는 왼발 복숭아 뼈에 금이 가고 얼굴과 팔다리, 가슴에 약간의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택시에 탔던 승객들과 내 차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중상이었다.
다음날 수술실로 실려가던 택시기사는 잔뜩 겁에 질린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약간은 웃음조차 띤 얼굴이었다. 나에게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택시기사는 앞가슴쪽 갈비뼈 몇 군데 부러지고 척추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사안의 심각성으로 미루어 상당기간 병원신세를 져야 할 판이었다.
운전기사 옆 자리에 탔던 사람은 뒷사람 이마에 뒤통수를 심하게 부딪쳐 뒷머리가 깨졌고, 엄청난 충격으로 눈 주위가 시커멓게 되었다고 했다. 갑자기 뒤통수를 심하게 맞으면 눈알이 빠져 나온다고 하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됐다. 여기에다 머리 부상으로 후각을 잃어버렸다는 사람 등 뒷자리에 탔던 승객들도 상당기간 치료를 필요로 하는 중상을 입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부상 정도를 들을 때마다 `여기서 내 인생은 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허탈한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눈조차 뜨기 싫은 심정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누워 있는 그대로 심연(深淵)의 나락으로 꺼져 들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최원정기자 ab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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