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65> 창조와 편집, 그리고 정치

창조는 ‘퍼즐’처럼 다양한 사실들을 편집해서 끼워맞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기자는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창조는 편집 그리고 정치라고 말입니다. /사진출처=morguefile.com

얼마 전 ‘에디톨로지’라는 개념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창조는 편집이다’ 라는 명제하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대부분의 것들은 온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과거의 진실을 편집한 것이라는 저자의 도발적인 선언이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류가 지적 재산권 개념을 고민하기 시작한 19세기 이전의 대부분 미술 작품이나 음악 작품들은 서로 구성을 베끼거나 재인용한 수준의 것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다른 작가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는 것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오마주’라거나 스토리텔링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문법’이라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작곡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작품들이나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오페라들도 알고 보면 옛 시대의 선율들을 새로운 형태로 변주하고 재조합한 것들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정한 창조의 원천이라거나, 우리 인류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예술가들이라고 경의를 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의미 부여’ 때문입니다. 정말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익숙하게 여기는 것들을 다른 패턴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독특한 의미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미 과거의 것들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독창적으로 재편집할 줄 아는 사람이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의 ‘전도서’에 나오는 것처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절대 없다는 명제가 여기서도 통하는 것일까요.

작고한 고려대학교 김인수 교수는 90년대에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모방에서 혁신으로’(Imitation to innovation)라는 책을 써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사실은 과거 선진국 기업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모방하며 성장에 필요한 경로를 단축시켜온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특히 일본이나 미국이 한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성공사례뿐만 아니라 실패 사례로부터도 많이 배웠습니다. 포스코 같은 기업은 일본의 철강 사업자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사업화될 수 있는 기술과 그렇지 못한 것을 알아보고, 전략적으로 투자한 결과 빠른 속도로 역량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대상을 알아보고, 그의 아이디어나 자원으로 효과적으로 편집하고 수정하는 방식에서 혁신과 창조가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조직 안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만 가능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기업들 입장에서는 기존의 경험이 중요한 ‘교과서’가 됩니다. 그래서 이미 조직 안에 형성되어 있는 상식이, 사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외부 환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막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다른 내용을 전달하려 해도 ‘근거가 빈약하다’거나 ‘다른 부서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으로 일축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가 대세가 변화하는 듯해 관리자 스스로 적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이미 생각했다니까’라며 과거 누군가의 혁신 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합니다. ‘에디톨로지’의 저자인 김정운 박사는 혁신과 창조의 저변에는 편집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자가 보기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구성원들의 정치적인 입장인 듯합니다. 사실상 ‘혁신’과 ‘창조’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 내부의 승인을 얻어야만 합니다. 내부적 합의를 거친 아이템에 한해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를 검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 국민 대기업으로 불리다가, 갑자기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 급감으로 고민에 빠졌다고 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조직 내부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과거의 ‘일하는 방식’이라는 자성 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합니다. 소비자 경험과 환경을 고려한 숱한 신상품의 개발 프로토타입(prototype)을 내놓아도, 정작 상용화되는 절차는 한 사람이 정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실험 정신이 크게 환영 받지 못했고 내부 정치적 관계로 인해 좋은 아이디어마저 사장되고 말았다는 게 반성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창조적인 결과물’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매우 험난하기도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면서 ‘창조’라는 결실을 맺을 것인가를 정하는 편집 절차가 요구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가를 판별하는 구조에 해당하는 정치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일 겁니다. 정말 조직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싶은 경영자라면, 자기 회사 안에서 어떤 국면으로 힘의 지도가 그려지는지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iluvny23@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