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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헤지펀드 공격에 손 놓은 한국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준선교수


삼성물산은 지난 2004년 이미 헤르메스와 일전을 치렀다. 헤르메스는 소버린, 칼 아이칸, 타이거펀드 등과 다름없이 경영간섭을 통해 차익을 실현하고 떠났다. 이른바 먹튀였다. 10년 후 삼성물산은 다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표적이 되고 있다. 엘리엇은 지금 꽃놀이 패를 쥐고 있다.

잇단 먹튀에도 제도보완 실종

엘리엇이 올해 초부터 돌연 취득하기 시작한 삼성물산의 주가가 이번 합병반대 의사표명으로 상당히 올라 장부상 이미 상당한 차액을 얻었다. 그러나 엘리엇이 그 정도 차액을 갖고 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엘리엇은 실무계와 학계에서 터무니없다고 생각되는 주주총회 결의 및 자사주 처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엘리엇은 다시 주주제안을 통해 현물배당이 가능하도록 정관변경까지 요구했다. 취득한 지 6개월이 안 된 상장회사의 주주가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가.

정관변경을 요구한 것은 단순히 먹튀만으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배당을 함부로 요구하기 시작하면 기업의 미래는 없다. 급변하는 생존환경과 기술환경 아래 축적된 자산이 없으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는 무배당회사이지만 1주의 주가는 2억원이 넘는다. 삼성물산이 가진 현물이란 대략 14조원이 넘는 가치를 가진 삼성전자 주식이다.



특히 7%를 넘는 의결권을 소유한 대주주는 회사에 대해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과거 소버린이 계열사 청산, 경영진 교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끊임없이 요구했다. 칼 아이칸은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의 기업공개를 요구했다. 엘리엇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이런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엘리엇은 합병이 무산돼도 손해 볼 것이 없다. 합병이 성사되면 삼성물산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되고 엘리엇은 물산과 전자를 넘어 그룹 전체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엘리엇은 한국의 법 집행이 엄밀하게 이뤄지는지를 볼 것이다. 편향적이거나 빈틈이 보이면 공격할 것이다. 최근 론스타와 만수르가 제기한 것과 같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로 가져갈 구실을 찾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2000년 이후 다수의 헤지펀드가 한국 기업들을 난타했음에도 아직 배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뼈아프다. 국제적 투자는 불가피하고 법률도 국제수준에 맞춰야 한다. 그러나 우리 법률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감사 선임에 있어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이상한 규정은 고집하면서도 미국도 일본도 다 인정하는 차등의결권제도나 포이즌필은 허락하지 않는다. 총회 의결정족수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까다롭다. 5% 이상 주식보유보고서도 기업 규모가 변했음에도 1991년도에 처음 만들 때의 5%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더 낮춰야 한다. 경영참여의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도 요구해야 한다. 단 여섯 글자로 된 '경영참여 목적'은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한다. 주식 이동이 자유로운 상장사의 경우는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만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포이즌필 등 법망 재정비 시급

국가와 정부는 국민만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한국 법률이 인정한 한국 국민인 만큼, 똑같이 보호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독수리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한국의 허술한 법률과 법 집행, 그리고 국가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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