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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04> 표준어와 비속어의 사회학


얼마 전에 독자로부터 좋은 메일을 받았습니다. 기자가 인용한 시인과 촌장이라는 가수들의 가사가 표준어에 규정되지 않은 표현을 썼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중략)… 헛된 바램들로’라는 내용에서 ‘바램’이 아니라 ‘바람’이 맞지 않냐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연히 맞는 지적이었습니다. 표준 국어대사전에 의해 동사형이 명사형으로 변환될 때의 규정 그대로 말이죠.

그렇다면 표준어는 정말 화자의 의도와 표현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까요? 최근 들어 웹상에서나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용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화났다는 것을 뜻하는 ‘빡치다’, 무엇인가 바람직하지 않고 하찮아 보일 때를 뜻하는 ‘찌질하다’, 완벽하게 누군가의 선호와 일치함을 뜻하는 ‘취향 저격’ 등의 표현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단어들은 표준어에 맞지 않는 것들입니다. 예능 토크쇼에서 방송인들이나 개그맨들이 스스럼없이 쓰기는 합니다. 80~90년대였다면 여러 번 방송심의위원회의 경고를 받았을 겁니다.

‘지금 너 어디서 반말이니?… 눈을 왜 그렇게 뜨냐고, 너 지금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지…’ 얼마 전 유명한 두 여자 연예인 사이에 오갔던 촬영 현장의 대화 영상이 공개된 바 있습니다. 나이가 서너살쯤 더 많았던 배우가 가수 출신 방송인에게 구사했던 비속어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정갈한 표준어와 방송에서의 깨끗한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담은 표현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고 심하게 화를 냈던 배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행동의 부적절성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한 사람을 오히려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조차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표준어는 이런 ‘날것의 심적 상태’를 정확하게 대변한다 보기 어렵습니다. 화가 난 사람이 문법과 상황에 알맞은 표현을 구사하는 것까지 신경 쓴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세를 받자 ‘바카야로(말과 사슴을 구분 못할 정도의 바보라는 뜻)’라고 했다고 합니다. 해당 상황은 NHK를 통해 전 일본에 생중계되었고, 결국 ‘바카야로 의회 해산’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초래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바카야로는 단순히 ‘바보’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멍청이, 나쁘게 보면 ‘X새끼’ 같은 심한 욕이 되기도 한답니다.

표준어는 매우 정치적인 과정을 거쳐 선정되는 단어입니다. 우선 트렌드가 되는 표현이 몇 년 간 계속되다 보면 ‘신어’(新語)로 규정됩니다. 당연히 은어라거나 비속어적인 의도가 섞인 말은 신어로 지정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여러 문헌이나 방송에 등장하게 될 경우 국어학자들의 토론과 합의를 거쳐 신어가 표준어화 됩니다. 정말 바람직한 말인지 아닌지,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표준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현실을 탓할 게 아니라, 표준어와 그에 해당하지 못하는 언어를 구분하고 각각의 고유기능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은어나 비속어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배척하기보다는, 그 또한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맥락과 상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 아닐까 합니다. 수많은 명사들의 충격 발언과 망언이 쏟아지는 이 시점에, 우리는 그 레퍼토리에 대한 분석이 매우 취약합니다. 어차피 표준어나 은어 모두 사회적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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