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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속으로 우는 선비들의 감성 오롯이

■ 옛 시정을 더듬어 (손종섭 지음, 김영사 펴냄)


"허술한 집에 스산한 바람 불어 들고/ 빈 뜰엔 흰 눈이 쌓이는데, /시름의 가슴과 저 등잔불은/ 이 밤에 타고 타 함께 재가 되누나."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수항(1629~1689)은 한겨울 눈 내리는 밤의 쓸쓸한 심상을 이 같은 시로 적었다. 지은이가 재로 남고 꺼져버릴 자신의 운명을 등잔불에 비유한 것은 기사환국(己巳換局ㆍ1680년 숙종 재위 시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으로 진도에 유배된 자신의 억울함 때문이다. 유교 윤리를 강조하는 조선의 분위기 탓에 표현의 절제가 몸에 배었음에도 하소연할 바 없는 선비는 이렇게 속으로 울었다. 소통의 수단이 발달한 오늘날 우리가 순간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문학자 손종섭이 옛 시인들의 한시를 우리말로 고스란히 되살려내 책으로 엮었다. 신라의 최치원부터 조선의 정약용까지 350수의 시로 옛 사람들의 다채로운 감성을 전한다. 대부분의 한시 평론들이 문학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데 치중하는 것과는 달리 저자는 한시에 대한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독자들까지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배려했다. 가령 '접시꽃'이라 제목 붙은 최치원의 시 "쓸쓸한 묵정밭 그 한 구석에/ 화려한 꽃 가지 휘게 흐드러졌네 (중략) 부끄럽다! 태어난 곳 본디 천키로(천하기로)/ 버림받은 이 원한을 참아 견디네"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꽃의 신세가 육두품으로서 신라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시인의 마음을 빗댄 것이라는 친절한 해석이 가미됐다. 저자는 "시심(詩心)이란 누구에게나 가끔은 깃들이는 '천진한 순수의 상태'에서 잠시 스쳐가는 '인간 본성'에의 향수"라며 "이 책은 미력이나마 한시(漢詩)에서 칙칙한 중국 옷을 벗겨 내고 산뜻한 우리의 한복으로 갈아 입혀, 우리말 우리 가락으로 노래하며 춤추게 하는 작업을 하노라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상ㆍ하권 각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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