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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57> 달변, 과하면 미덕이 못돼요


어느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를 다녀왔습니다. 활발한 연주 활동으로 잘 알려진 그는 여러 작품을 연주하면서 작곡가의 삶이나 창작 의도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직접 들려줬습니다. 이른바 ‘해설이 있는 음악회’입니다. 그런데 다른 연주회와 조금 포맷이 다릅니다. 보통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평론가나 방송인 등이 등장해 사회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주자는 곡을 음악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데 집중하는 것이죠. 그러나 기자의 지인인 피아니스트는 자신이 생각했던 음악회 콘셉트를 청중에게 더욱 명료하게 전달하고 싶었던지 직접 해설자로 나섰습니다. 감칠맛 나는 멘트와 함께 대중들이 잘 몰랐던 작곡가의 야사까지 곁들여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았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던 시각, 그에게 인사하려고 몰려든 관중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음에도 꼭 들려주세요! 연주와 해설을 같이 할 만한 시간이 되신다면요.’

집으로 돌아와서 기자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봤습니다. ‘자신의 기술로 모든 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 연주자가, 청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해설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실 모든 공연에는 ‘프로그램 노트’(Program note)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문 평론가나 해설가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책자가 대신하는 것이죠. 작품의 기법적 특징이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리뷰하기도 하고, 연주자의 간단한 감상 등이 첨부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중들은 이 자료를 제대로 읽지 않습니다. 2,000~3,000원을 주고 샀다가 그냥 공연장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가져간다고 해도 다시 읽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가 정성 들여 쓴 해설을 ‘기념품’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꺼내볼 법도 한데 말이죠. 그 때문일까요. 공연 콘텐츠를 마음 속에 깊게 담아두지 못한 청중을 배려하느라 많은 연주자들이 해설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다양한 콘셉트로 말이죠.

곡을 들려줄 사람이 친절하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까지 해 준다는 것,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자신이 연주하기 전에는 절대로 식사를 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금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대 위에서 소화가 안 된다거나, 몸이 불편해지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가 온전히 음악에만, 청중과 교감해야 할 유일한 언어인 콘텐츠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의사결정 전에 가벼운 금식을 통해 정신을 맑게 한다는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역으로 연주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이야기를 무심코 던지는 사람들은 정말 대담해 보입니다. 그리고 에너지 소모가 정말 클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주의가 분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그래서 기자는 수많은 연주자들에게 오직 자신의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을 즐기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콘텐츠에 대해 누군가의 해설이 덧붙여지고 분석의 잣대가 가해질 때, 우리는 상상력이 제한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말 없이 연주자와 작곡가의 원숙한 음악을 즐기고픈 청중들에게 또 다른 정보가 유입된다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 설득을 잘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이 자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때로는 조용함이 더 매력적일 때도 있는 법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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