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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부러운 미국의 싱크탱크

최형욱 뉴욕특파원 choihuk@sed.co.kr


지난달 초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보스턴 연차총회에서 전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킨 '21세기 자본론'을 두고 토론회가 열릴 때였다. '맨큐의 경제학'으로 한국에도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등 주류 학자 세명은 '좌파의 록스타'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를 불러놓고 난타전을 벌였다. 인상 깊었던 것은 사회를 맡은 맨큐 교수의 자세였다. 그는 패널 토론에 들어가자 다른 교수들의 반박 요청은 무시했다. 대신 피케티 교수에게 더 많은 시간을 배려했다. 비록 이론 자체는 매장시키려 안간힘을 썼지만 3대1로 싸운다는 사실에 공정성을 유지한 것이다.

미국적 토론 문화의 특성은 하다못해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서도 드러난다. 미 유력 언론사들은 인종차별이나 증오를 선동하는 악플이 한국처럼 사회 문제가 되자 이를 차단하는 시스템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댓글을 사회적 이슈에 대한 건강한 담론 형성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 때문인지 외신을 검색하다 보면 제법 수준 높은 댓글도 눈에 띈다.

지난달 말 미네소타주의 지역 언론인 '퍼블릭 라디오'가 미네소타주와 위스콘신주 경제를 비교하는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인접한 이들 주는 인구·환경·면적·경제력 등이 거의 비슷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네소타가 성장률·실업률·세수 등 대다수 경제지표에서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미국 내 진보 진영은 미네소타가 증세로 마련한 자금을 교육 등의 인프라에 투자한 반면 위스콘신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韓 증세논쟁 뒷받침할 정책 없어

반면 이 지역 언론은 미네소타에는 경기 회복의 수혜를 제대로 누린 교육·의료·서비스 비중이 높은 반면 위스콘신은 일자리 창출이 더딘 제조업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증세 효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기사 밑에는 주지사의 정치적 성향이나 각각의 성장 과정 등을 비교하는 반박 댓글이 달려 있어서 관련 주제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지적 풍토의 정점에는 수많은 좌우 싱크탱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초당파적 연구기관도 널려 있다. 미 워싱턴 정가는 선거나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싱크탱크에서 양산한 정책을 앞세워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나아가 이들은 미국 세계질서 지배의 이론적·정책적 토대도 제공한다.



느닷없이 미국 싱크탱크 타령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증세 논쟁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나아가 증세가 왜 성장에 지장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주요 20개국(G20)·경제협력개발기구(OECD)·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 등 대다수 국제기구들조차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소득 불평등 해소가 시급하다고 경고하는 판이다.

야당 역시 한국 경제의 역동성도 살릴 수 있는 한국적 복지 모델의 미래상은 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대선 때는 여당과 야당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무상급식·무상보육 등 여러 정책은 실시됐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오락가락할 뿐 최종 지향점은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성장-분배 논쟁이 시작됐는데도 미래 청사진 논의는 지난 10여년간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다.

독립적 민간 싱크탱크 육성 고려를

이런 상황이 양당의 정책 어젠다를 뒷받침해줄 만한 싱크탱크 부족이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은 지나친 억측일까. 정치적 구호만 난무해서는 소모적인 정쟁이 거듭될 공산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 국고보조금의 일부를 떼어내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를 육성하는 방안은 어떨까. 각각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기반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책을 내놓고 이를 통해 상호비판이 가해진다면 뭔가 접점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책 연구기관이나 대기업 산하 싱크탱크는 정부 용역이나 기업 컨설팅 성격이 짙고 시민단체 연구소는 영세해 미국과 같은 역할을 떠맡기 힘들다. 미국의 석유 재벌인 코흐 형제처럼 부자들이 사비를 털어 연구소를 지원하는 상황도 기대하기 어렵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기'에 가까운 소리로 비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최근 증세 논쟁을 보면서 나오는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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