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하루짜리(overnight) 달러를 차입해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상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 초단기 자금시장까지 꺼져버리면….” (시중은행의 외화자금 담당자)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으로 2주일 이상 외화 단기자금시장이 얼어붙자 은행권은 극심한 외화 가뭄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자금시장 경색으로 달러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글로벌 은행조차 9월 말 분기 결산을 앞두고 국내 은행과의 단기 자금 거래를 속속 끊어버리고 있어 시중은행들의 단기 외화사정은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다. 정부가 스와프시장을 통해 100억달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큰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지적된다. ◇해외 은행과의 단기 차입도 자취 감춰=은행권은 지난해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이후 글로벌 본드를 발행하기 어려워지자 신뢰관계를 쌓은 해외 은행들과의 단기 차입에 의지해왔으나 이마저도 거래선이 속속 끊어지고 있다. 서영호 우리은행 자금부 부부장은 “3개월ㆍ6개월 등 해외 은행과의 기간물 거래가 완전히 끊겼다”고 전했다. 살인적으로 금리가 치솟고 있는 1개월물도 그나마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은행 간 1개월짜리 금리는 리먼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리보에 40bp(bp=0.01%포인트)의 가산금리가 붙었지만 지금은 무려 200bp를 얹어줘야 한다. 은행권은 신규 외화대출은커녕 만기가 돌아오는 달러 채무를 갚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본드 시장은 물론 특정 투자은행(IB) 및 연기금과의 사모시장, 기업어음(CP) 등 단기자금시장에 이어 콜시장까지 마비되자 단기 유동성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은행권은 9월에만도 1년 이상 장기물 24억달러를 포함해 180억달러를 차환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콜ㆍ1주일ㆍ2주일 등 단기물 발행으로 버텨왔지만 단기물 발행은 갈수록 단기 채무 비중을 늘리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스와프시장 개입 효과는 미지수=정부가 스와프시장에 100억달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의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스와프시장에서 달러를 공급해온 외은 지점 등이 거래를 끊자 평소 100억달러 안팎이던 하루 스와프거래 규모는 20억달러로 확 줄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자가 없다 보니 시장에 파리만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 정부가 하루 거래량 수준인 100억달러를 공급한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1개월짜리 등 단기 달러 스와프 물량을 집중적으로 공급하면 단기 자금시장은 호전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인 주식 매도에 따른 달러자금 이탈, 무역수지 악화 등이 계속되면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스와프시장을 통해 100억달러를 풀 경우 오히려 외국계 은행 등으로 돈이 흘러갈 수도 있다”며 “머니마켓을 통해 직접 자금을 공급해야 국내 금융회사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그동안 1일 및 주간 시장 상황을 계속 보고해왔는데 지금에서야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다”며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 한 정부의 개입효과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화대출 억제 가속화=은행권의 달러가 고갈되자 기업에 대한 외화대출도 축소되고 있다. 신규 외화대출을 중단하는 동시에 만기 대출은 속속 회수하자 기업들의 외화 자금난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실물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은행권의 자금담당 관계자는 “은행권이 하루짜리 달러자금도 부족해 난리인데 외화대출을 축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은행권은 “한국은행에 기업 운전자금에 대한 외화대출 만기 연장 등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며 화살을 당국에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권은 특히 외화대출뿐 아니라 기업들의 수출용 자금인 수출환어음 매입 규모도 축소하고 있다. 수출환어음 매입을 축소할 경우 수출 감소, 나아가 무역적자 확대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국민은행은 최근 지점에 ‘외화대출을 억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고 우리ㆍ신한 등 다른 은행들도 만기 대출을 적극 회수함으로써 유동성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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