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이 부동산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참여정부가 역대정권과 차별성을 내세우며 심혈을 기울여온 정책근간인 부동산 정책을 여당이 공격하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여당 내에 확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당은 정부의 투기억제 원칙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규제 일변도의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갖고 있다. 그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급확대를 통해 초과수요를 억제함으로써 가격안정을 기하자는 게 우리당의 기본 방향이다. 원칙보다는 시장의 현실을 정책에 담아내야 한다는 일종의 ‘현실론’인 셈이다. 골자는 중대형 평형 아파트의 공급확대. 강봉균 우리당 정책위수석부의장이 당의 대표적인 공급확대론자다. 강 수석부의장은 “시장수요가 중대형 아파트를 요구한다면 시장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당은 재정경제부ㆍ건설교통부 등과 16일 당정협의를 거쳐 공급확대 방안을 오는 17일로 예정된 대통령 주재 부동산대책회의에서 강력하게 제기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당의 독자노선이 채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판교에 버금가는 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되면서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이 규제 일변도에서 공급확대 정책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수요억제를 모토로 한 청와대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14일 “언론에 추가 신도시 개발이 보도되는데 매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공급확대를 위한 신도시 건설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정세균 원내대표의 ‘부동산정책 전면 재검토’ 발언에 대해서는 청와대 관계자가 “조율을 거친 것이 아니라 당의 생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에서의 주택공급 확대는 곤란하다”고 밝힌 적도 있다. 결국 부동산정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되는 청와대 회의에서 당이 의견개진은 하겠지만 최종 결정자는 역시 대통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급작스런 정책변경이 이뤄질지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청와대 회의에서 주택거래허가제 같은 더욱 강력한 처방이 동원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만 대체적인 전망은 수요억제라는 기존의 정책 틀을 유지하면서 제한적인 공급확대 정책을 병행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데 모아지고 있다. 최근 강남과 판교 인근을 중심으로 민심 이반을 야기할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다 공식적인 회의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청와대의 자세 자체가 이전의 완강한 입장에서는 다소 물러선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정책변경을 위한 모양 갖추기라는 해석도 있다. 당의 움직임이 참여정부 2기의 부동산정책이 전반적으로 재검토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우리당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데는 또 당정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적 계산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은 최근 당정간 정책혼선 문제가 정부의 여당에 대한 정보제공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독자적인 정책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세균 원내대표가 직접 주재하는 고위정책조정회의나 그 산하에 각 사안별로 정책기획단을 구성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날 국회 건교위 전체회의에서 우리당 의원들은 강남ㆍ분당 지역 집값 폭등, 판교 신도시발 부동산 투기, 임대주택 부도사태 등에 대한 정부의 대책부재를 집중적으로 질타한 것도 부동산정책 궤도수정에 대한 여당의 의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