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2월21일 정오, 동베를린. 서독과 동독이 기본조약을 맺었다. 골자는 두 가지. 상호 승인과 유엔 동시 가입이다. 본조약 외에 통행규제 완화, 이산가족 재결합, 우편물 교환 확대 등을 포함하는 각서도 교환, 본격적인 협력의 장을 열었다. 동서독기본조약은 발표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독일 문제의 독일화’라는 원칙이 정해진 것이다. 2차 대전 전범국으로 분단 27년 만에 민족의 운명을 독일인의 의지대로 결정하자는 조약을 성사시킨 주역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1969년 집권 후 ‘동방정책’을 표방하며 소련과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했다.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는 관계를 개선하지 않는다는 ‘할슈타인원칙’을 기조를 삼아온 서독이 내린 파격적인 조치는 결국 동서독 상호 인정과 화해로 이어졌다. 브란트 총리는 먼저 여건 조성에 나섰다. 승전국의 권리를 가진 미국과 영국ㆍ프랑스ㆍ소련을 설득해 ‘동서독 현안은 독일 내부 문제’라는 베를린협정(1972년 6월)을 이끌어낸 것. 미국의 반대가 없지 않았지만 금-달러본위제를 폐지(1971년)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다급한 미국에 최대한 협조함으로써 독일 문제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양독조약을 바탕으로 동서독은 1973년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교류를 확대해나갔다. 연간 500만명 이상의 동독인이 서독을 방문하고 동독 시청자의 70%가 서독 TV를 시청하면서 통일 기운도 무르익었다. 결국 1990년 10월, 동서독은 분단 45년 만에 통일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양독조약 체결 이후 통독까지 서독은 연간 평균 32억달러씩을 동독에 퍼부었다. 정권이 교체돼도 통일정책의 근간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일관된 정책과 돈의 힘이 통일을 성사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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