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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레드'

빛과 어둠처럼… 대립하며 순환하는 예술·삶

실존 화가 로스코 일화 극화… 두 男배우 완벽한 연기 호흡

치열한 예술논쟁 생생히 담아


막이 오르면 무대는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미국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크 로스코 작업실을 표현한 공간. 그 위에서 로스코와 그의 조수 켄이 펼쳐내는 예술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선명한 물감이 되어 무대와 객석을 물들인다.

지난 3일 개막한 연극 '레드(사진)'는 두 명의 배우가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실존 인물인 로스코의 일화를 극화한 이 작품은 가상의 인물인 로스코의 조수 '켄'을 등장시켜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생명과 죽음 같은 삶의 순환을 그려낸다.

순환을 드러내는 방식은 대립·갈등이다. 로스코를 상징하는, 실제 그가 천착했던 레드의 대척점엔 블랙이 있다. "내가 두려운 건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 거라는 거야." 로스코의 말처럼 블랙은 생명의 레드를 덮쳐 올 죽음이다. 그 죽음은 곧 로스코와 표현주의를 위협하며 부상하는 앤디워홀과 팝아트이자 아버지 세대를 밀어낼 아들 세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때 로스코와 그의 친구들이 피카소와 마티즈의 큐비즘을 몰아내고(?) 표현주의의 새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대립하며 순환할 수밖에 없는 예술과 삶의 진리는 인물의 변화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극 초반엔 로스코가 속사포 같은 질문과 질타를 쏟아내며 켄을 압도한다. 그저 물감을 짜고 캔버스를 만드는 단순한 조수였던 켄은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예술사와 철학, 더 나아가 로스코의 작품에 대한 견해를 토해내고, 종국에는 스승의 계획마저 철회시킨다.

세대의 갈등, 레드와 블랙의 대립은 그러나 '새로운 변화'라는 또 다른 의미의 화합을 향한다.



극 말미 로스코는 켄을 해고하며 "네 인생은 저 밖에 있어. 새로운 걸 만들어"라고 말한다. 애초 자연광조차 용납하지 않던 로스코의 작업실에 문을 열고 들어온 켄은 세대의 만남이자 소통의 시작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경쟁하듯 캔버스를 레드로 밑칠한 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장면은 그래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하나의 캔버스를 채워가던 두 개의 붓, 그리고 두 남자의 열정적인 뒷모습은 생명력 넘치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레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술·철학적 수사가 난무하는 미로 속에서 관객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건 단연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로스코 역의 정보석과 켄 역의 박정복은 2011년 초연 이후 3연째인 레드에 새로 합류했지만,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색다른 레드의 매력을 만들어냈다. 특히 박정복은 이번 작품이 첫 연극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연기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켄이 떠나고 홀로 남은 작업실. 로스코는 조용히 작품을 응시한다. 그 속엔 신세대와의 충돌로 회복한, 생동하는 레드가 있다. 연극 '레드'는 31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을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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