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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세계적 식량학자 바빌로프의 일대기

■바빌로프<br>피터 프링글 지음, 아카이브 펴냄


세계적인 식량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년~1943)는 인류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세계 오지를 탐험하며 재배 식물 육종을 수집했던 러시아 과학자이자 달의 분화구에도 이름을 새겨넣을 정도로 인류에게 공헌한 학자다. 하지만 스탈린의 정치적 박해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 그의 일대기를 다뤘다.

지구에는 현재 유전자변형 곡물이 재배되고 새로운 품종은 기업농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또 수시로 요동치는 세계의 식량가격 등의 문제도 해결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긴 한 식량학자의 헌신을 엿볼 수 있다.

바빌로프는 1887년 러시아 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농업학교에 진학하면서 과학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세계 곳곳을 누비는 식물학자로 성장하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이 계기가 됐다. 30살에 젊은 농학 교수가 됐고 본격적으로 세계 각지를 돌며 내성에 강한 씨앗 찾기에 나선다.

초기에 러시아의 척박한 땅과 혹한의 기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작물 개발로 시작됐던 그의 여정은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인류의 기근을 없애겠다는 이상으로 발전한다. 파미르 고원부터 에티오피아, 아마존 열대 우림, 아메리카 대륙까지 찾아다니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 찾기가 그의 핵심 과제가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욱 접근하기 힘들고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여정이다. 그가 찾고자 했던 식물은 대부분 그런 지역에 있었다. 러시아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특징인 역질 토양, 극한의 기후, 적은 강수량, 짧은 생장기 등을 견뎌내는 작물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근간으로 식물 배양을 시작했고 이후 최초의 식용식물 국제종자은행을 설립하는 결실을 이뤄낸다. 하지만 그는 스탈린의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55살의 나이에 감옥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그가 복권한 것은 스탈린 사후였다. 1967년 식물산업연구소로 불리던 그의 연구소도 N.I.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로 개칭되고 그의 연구 철학은 전 세계로 퍼져 식물종 유전자 수집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2008년 노르웨이에 들어선 스발바르 국제 종자저장고가 대표적 사례. 이곳에서는 전 세계 모든 재래식물의 종자가 영하 18도 상태에서 보존돼 있다. 그는 1987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완전한 신원회복도 하게 된다.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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