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로터리/3월 31일] 토끼 울타리

이우철(생명보험협회 회장)

지구상에서 가장 긴 성벽을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중국의 만리장성을 꼽을 것이다. 중국의 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자위관까지 수천㎞에 이르는 만리장성은 인류가 만든 가장 긴 성벽이다. 그런데 만리장성처럼 장대하지는 않지만 길이만큼은 이와 견주어도 손색 없는 울타리가 있다. 바로 호주 서부에 있는 래빗 프루프 펜스(Rabbit-Proof Fenceㆍ토끼 울타리)다. 이 토끼 울타리는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토끼를 막기 위해 만든 약 3,200㎞의 철사 그물망이다. 토끼때문에 이런 울타리를 만든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원래 호주 대륙에는 토끼가 없었다는 것이다. 수천㎞의 울타리를 만드는 대역사를 이루게 한 토끼가 호주에 처음 들어온 경위는 다소 황당하다. 지난 1859년 토머스 오스틴이라는 빅토리아주의 한 농장주가 별 생각 없이 수렵용으로 토끼 몇 마리를 영국에서 들여와 자기 농장에 방목을 한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50년이 채 되지 않아 호주 대륙은 토끼로 뒤덮이게 된다. 급속하게 증가한 토끼로 농작물의 피해가 커지게 되자 이를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북부해안부터 남부해안까지 호주 대륙을 남북으로 잇는 울타리를 1901년부터 세우기 시작했고 피해가 확산되자 울타리 중간부분에서 또 다른 제2ㆍ제3의 울타리를 세우게 됐다고 한다. 비록 아주 사소하더라도 아무런 준비와 계획 없이 단순하게 저질러진 행동이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비단 자연 생태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준비 없이 들여온 생활양식과 제도는 사회전반에 걸쳐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금융위기에서 비롯한 실물경제의 위기, 세대와 계층 간의 갈등 등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이것의 해결을 위해 더욱 창의적이고 선진적인 사회ㆍ경제적 제도와 양식 등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속담과 같이 충분한 검토와 준비, 그리고 계획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조금 기다리는 참을성도 필요하다. 아무런 준비나 계획 없이 들여온 토끼 몇 마리 때문에 3,200㎞에 달하는 철사 울타리를 만드는 우를 우리도 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