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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인터넷은행 최악의 시나리오



수년 전 국내 굴지의 제도권 대부업체 오너와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에게 왜 대부업체들이 유독 5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이나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광고 마케팅을 벌이는지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액 대출이라면 고객이 대출을 갚지 않아도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어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어지간하면 빌린 돈을 떼먹지 않더라"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흔히 대부업체들은 대형 은행들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그들은 돈을 빌려주는 여신업에서 망하지 않는 비결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대부업자의 성공이 대출 고객, 즉 소비자들의 후생과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난 노무현 정부는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대부업법을 제정했다. 덕분에 고금리 사채업자들은 합법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금리 경쟁을 통한 서민들의 대출 원리금 부담 인하 효과는 미흡했다. 오죽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업 대출 금리 상한제를 강화했을까. 결과적으로 대부업법 제정은 업자들의 밥그릇만 보장해줬을 뿐이다.

30일부터 박근혜 정부는 금융 및 정보통신기술(ICT) 시장 변혁에 이정표를 찍게 된다.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의 예비인가를 내주기 위한 후보자 접수를 이날부터 시작한다. 전통적 금융업에 ICT를 결합한 이른바 '핀테크' 시대를 열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담긴 정책이다. 이를 통해 서민금융 등을 확충하는 정책 의지도 담겨 있다. 세계적 추세를 감안할 때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그러나 기자의 직업병 탓인지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면 항상 실패의 우려는 없는지 따져보게 된다. 노무현 정부 때 대부업법이 그러했듯 박근혜 정부의 인터넷결제은행 도입 역시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무엇보다 인터넷결제은행이 탄생도 하기 전부터 고삐를 매 두려는 정부 정책이 이런 노파심을 부추긴다. 이른바 '중금리 은행론'이다. 새로 출범할 인터넷전문은행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기존의 재래식 은행들과 고금리인 제2금융권 사이에서 중간 정도의 금리, '중금리'로 대출 서비스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금융당국자들의 입장이다. 이는 자칫 "인터넷은행은 대형 은행들과 직접 경쟁하지 말고 1금융권과 2금융권 사이에서 적당히 장사하라"는 식으로 곡해될 수 있다. 기왕 23년 만에 새로운 은행을 허가해주려는 것이라면 경쟁의 범위를 이처럼 자의적으로 칸막이 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새 은행이 칸막이 없이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도록 유도해 금융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렇게 신규 은행이 제1금융권의 금융 대마들과 경쟁해야 수십 년간 정부가 보장해준 과점 구도에서 '땅 짚고 헤엄치듯' 영업해온 대형 은행들이 정신을 차리게 된다.

서민용 중금리 시장은 지난 정부 들어 연쇄 부도 사태로 무너진 저축은행권을 재정비해 확충하면 될 일이다. 아울러 인터넷전문은행은 손쉬운 주택담보 대출, 자영업자 대출에 욕심내지 말고 벤처기업·스타트업들과 공생할 수 있는 기술금융에 매진하기 바란다. 새로 탄생할 은행은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꼴이 나지 않도록 내부 통제를 단단히 하고 사외이사를 엄선해야 할 것이다. 특혜 시비가 없도록 관피아와 정치인은 경영자·사외이사·고문·감사 등의 인선에서 배제하는 것이 좋겠다. 현 정부가 단행한 모처럼의 혁신이 다음 정부에서 특혜와 부실로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도록 말이다. /민병권 정보산업부 차장 newsroo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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