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현역의원 중 유일하게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한 그는 대선 후 정 전 의원, 신기남 의원이 포함된 이른바 '천·신·정' 3인방 중 한 명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후 이해찬 의원을 꺾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오르는 등 당시 여권 핵심인사로 떠올랐다. 원내에서 개혁입법을 추진하던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법안' 처리에 실패한 뒤 사퇴하고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강정구 교수의 국보법 위반 사건에 헌정사상 처음으로 불구속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원내외를 넘나들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19대 총선에서 '중진 차출론' 속에 야당 열세 지역인 서울 송파을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에게 3.9%포인트 차로 패배하면서 원외로 밀려났다. 이후 광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지역활동에 집중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이번 재보선에서는 '호남 정치의 부활'을 외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승리를 확정 지은 천 당선자는 당선소감에서 "광주 정치를 바꾸고 호남 정치를 살려내겠다"며 "어느 지역도 소외되거나 낙후되는 일이 없는 지역평등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1954년생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18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회원 △15·16·17·18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국회 운영위원장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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