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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박주헌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자원개발, 적립식펀드 하듯 긴호흡으로 투자해야 결실"

시장판도 바꿀 셰일혁명 대비 에너지원 포트폴리오 다변화해야

신재생에너지 기업 참여 늘리려면 판매시장 독점구조 개선을

전기료 OECD중 가장 저렴… 시장충격 없게 단계적 정상화 필요



"자원개발은 적립식펀드 하듯이 꾸준해야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자원 가격은) 언제 오르고 내릴지 모릅니다. 주식시장에서도 결국은 적립식펀드가 돈을 법니다. 단기 시황에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투자하다 보면 수익이 나는 시점이 분명히 올 겁니다."

박주헌(사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경제신문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원개발은 긴 호흡으로 투자해야 결실을 볼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원장은 4월 초 취임했다. 20여년 만의 친정 복귀다. 연구위원에서 연구원 수장으로 돌아온 만큼 취임 이후 지난 한달여 동안 국책 에너지연구기관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박 원장은 오랜 기간 강단에 섰던 교수 출신답게 각종 에너지

인터뷰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자원개발 논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박 원장은 "최근 자원외교 과정에서 부진한 사례가 발견되고 있어 비판을 받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에너지 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자원부국과의 긴밀한 네트워크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원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 자립도 4%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힘들지만 자원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합의라면 경제외적인 문제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빈국인 한국의 처지에서 자원개발은 중장기 정책목표를 세워 반드시 추진해야 할 숙명과도 같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자원개발 국정조사 등으로 앞으로 에너지 공기업들이 자원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원장은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자원개발 협력사업 자체가 위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자원개발에 들인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마저 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자원외교의 정책목표도 보여주기식에서 벗어나 장기적 시각에서 자원부국과의 협력기반을 더 강화하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원장은 "지금까지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는 분명히 소중한 자산"이라며 "전략적 사업을 다각적으로 발굴하고 발굴된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이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통째로 바꿀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과거보다 에너지 정책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며 "전 세계에 불어닥친 저유가 기조와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된 것도 셰일가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던 미국이 셰일가스 덕분에 머지않아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돌아서고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등 에너지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국제 에너지 시장이 새로운 질서를 찾아 요동치고 있다"며 "저유가 기조가 정착된다면 우리 경제에 다행이지만 유가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높아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박 원장은 "우리는 96% 이상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라며 "에너지원 포트폴리오 다변화, 수입선 다변화로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금융시장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듯이 에너지 시장 변동의 영향을 덜 받으려면 석유나 석탄 비중을 줄이는 대신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보급,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생각은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전환과 에너지 도입선 다변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국제공조 강화 등을 내용으로 지난해 초 발표된 정부의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신재생에너지도 박 원장이 주목하는 분야다. 박 원장은 "아직 기술적 완성도나 경제성 측면에서 신재생에너지는 (주에너지원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지만 온실가스나 환경 문제에 대응해 인류가 에너지난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기본적 인식이 원자력은 불안해서 안 된다고 하고 석유나 석탄에너지는 무작정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가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얘기다. 박 원장은 "신재생에너지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날이 바로 화석에너지가 박물관으로 가는 날"이라며 "전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개발에 나선 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신재생에너지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시장 논리에 따라 개발이 이뤄지고 규제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판매체계 및 공기업 판매시장 독점구조 등 제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에너지 신산업을 잉태하는 것은 정부 몫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결국 기업이 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작은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이었지만 결국 기업 등 민간이 참여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는 진단인 셈이다.

그는 "산업 초기에는 보조금이나 이런저런 지원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장기적 에너지 신산업 육성의 성패는 이윤이 창출될 수 있는 시장구조에 달려 있다"며 "지금같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의 전기가격과 새로운 사업자의 진입을 불허하는 시장구조로는 에너지 신산업 육성이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에 대해 그는 "개선할 점이 많다"고 밝혔다. 우리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저렴하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우리보다 1.3배, 일본은 2.8배가량 비싸다.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단계적으로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석유류보다 전기요금이 싼 유일한 나라"라며 "이는 마치 햇반 같은 즉석밥이 쌀값보다 싼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OECD 국가의 전기료는 석유류의 약 2배 수준이다.

그렇다면 적정한 전기료 수준은 어느 선일까. 박 원장은 "원가 회수율이 100%가 안 되고 환경비용 등을 고려해야 하는 등 적정한 수준을 딱 잘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면서 "확실한 것은 OECD 국가 중 가장 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워낙 싼 전기료에 익숙해지다 보니 에너지 과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게 된 것"이라며 "하지만 갑자기 인상하면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경제주체들이 가격 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에너지 가격을 기본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수급에 맞춰 움직일 수 있게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개방경제를 추구하는 한 가격도 신축적으로 시장의 수급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는 게 좋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에너지 수급에 상관없이 물가대책 차원에서 접근했는데 이제는 이런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 기간산업이고 투자 규모가 큰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것도 무책임하지만 경쟁원리가 작동되게끔 시장 본연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박 원장의 소신이다.

지구촌의 화두인 온실가스 감축 문제에 대해 박 원장은 국익 차원에서 정치·외교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각국은 지난해 국제사회가 합의한 '리마 기후행동요청'에 따라 오는 10월1일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UNFCCC)에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이행방안을 담은 '자발적 기여공약(INDC)'을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유엔 제출시기를 앞두고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 등 관계부처 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이미 감축목표치를 제출한 상태다. 박 원장은 "미국이나 일본이 줄이겠다고 제시한 목표치는 사실 해당국의 에너지 수요 추세선 안에 있다"며 "가만히 둬도 셰일가스 혁명,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으로 에너지 수급상황이 바뀌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설정한 목표치는 추세선 안에 있지 않다"며 "성장을 포기하거나 국내총생산(GDP)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등 특단의 비용을 치러야 목표달성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He is…

△1961년 서울 △1983년 연세대 경제학과 △1985년 연세대 경제학 석사 △1990년 미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1991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995년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2010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2011년 한국석유공사 이사회 의장 △2013년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합동 워킹그룹 원전분과장 △2014년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민간위원 △2014년 전력수급계획 자문위원 △2015년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에너지+ICT 융합' 집중 연구… 새 블루오션 개척할 것

■ 중장기 에너지 정책은

박주헌 원장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단기과제나 정부정책 기여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중장기 정책 개발에는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박 원장은 그러면서 "조만간 조직개편을 통해 중장기정책개발단을 원장 직할조직으로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장기 에너지 정책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일종의 태스크포스(TF) 형태가 될 것"이라며 "임기 동안 직접 관리하고 이끌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신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 간 융합으로 새로운 블루오션을 중장기 연구를 통해 찾아 나가겠다는 포부다. 박 원장에 따르면 중장기정책개발단은 전임으로 박사급 한 명을 책임자로 두고 연구 진행과제 중 중점과제를 선정해 심층 연구해 나가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원장은 "연구원에서는 통상 60~70개 연구과제가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데 그중 5~6개의 핵심 중장기 과제를 선별해 직접 챙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에 대비한 중장기 에너지 전략 수립도 시급하다. 박 원장은 "북한 경제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에너지(전력수급) 문제"이라며 "통일이 되면 북한 경제를 이른 시일 내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중요한데 전력 같은 에너지 문제가 가장 큰 현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아직 통일 이후의 체계적인 에너지 전략에 대해서는 연구성과가 많지 않다"며 "지금부터라도 시나리오별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에너지 정책연구 로드맵을 갖고 있어야 정치·경제·사회 안정을 이루는 남북통일의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임기 동안 연구원을 글로벌컨설팅사 수준의 생산성을 갖춘 조직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박 원장은 "정부 등 공공을 상대로 제대로 된 컨설팅을 하는 것이 연구원의 존립근거"라며 "맥킨지·보스턴컨설팅·액센추어 등 글로벌컨설팅사가 벤치마크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들 글로벌컨설팅사는 맨파워는 물론 체계화된 연구성과와 높은 생산성으로 명성이 높다. 비결은 축적된 연구물을 데이터베이스(DB)로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맞춤형으로 컨설팅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박 원장은 "궁극적으로 정책수요자들에게 꼭 필요한 맞춤식 연구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연구성과를 DB화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모델을 만들면 다른 국책연구기관들도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담=김정곤 경제부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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