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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카리스마 연기-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책도 미디어셀러가 대세다. 옛날에는 영화화하면 내용이 미리 드러나 책이 안 팔린다고 꺼렸지만 요즘에는 영화화해야 더 잘 팔린다. 그것도 대박 수준으로. 만화책 '미생'이 드라마 덕에 200만부를 돌파한 것이 한 예다. 책도 원소스멀티유즈(OSMU)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책도 열심히 본다. 박성봉 교수(경기대)의 '대중연기의 미학(동연·2012년)'도 재미있게 읽었다. 유명 배우들의 연기를 미학적으로 해석, 평가한 책인데 '연기자와 카리스마(제2장)'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에게 카리스마 연기란 '너무 어려워 구한다고 얻어지지도 않지만 막상 얻게 되면 그저 평범한 일상(日常)일 뿐'이라는 것인데 모든 연기자를 향한 경구처럼 느껴졌다.

평소 우리 연예계가 '카리스마(Charisma)'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였다. 카리스마는 매우 어려운 말이다. 정치학자 막스 베버가 지배(정치 권력)의 정당성이 세 가지 원천에서 나온다면서 제시한 세습·합리성·카리스마의 그 카리스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신(神)이 준 특별한 능력, 예지, 권위 등을 일컫는다.

우리도 건국 이후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나왔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 안팎일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연예계에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이제 갓 연기를 시작한 20·30대 신인배우도, 10대 티를 채 못 벗은 걸그룹도 다 "카리스마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걸그룹의 카리스마는 섹시 카리스마란다). 찬사도 이런 찬사가 없다.

젊은 여직원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연기자들이 그런 극찬을 받느냐고.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인상을 잘 쓰는 배우, 세상의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 시도 때도 없이 심각한 얼굴을 들이미는 배우, 터프가이처럼 보이려고 그러는지 대사에 욕설을 잘 섞어 쓰는 배우일수록 '카리스마 연기자'라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연기는 궁극적으로 한 배우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다. 극 중 인물 A를 100명의 배우가 연기해도 다 다른 100명의 A가 나오는 것은 배우가 저마다 자신의 삶과 인생을 통해 A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인생의 한 문턱도 채 넘어서 보지 않은 젊은 연기자들에게까지 카리스마 운운할 것은 아니다. "연기를 곧잘 하는 배우" 정도면 충분하다.

얼마 전 SBS의 인기 오디션프로그램 K팝스타4에서 심사위원들이 20대 초반의 한 참가자에게 "이런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 음악 관두겠다" "내가 지금껏 쓴 200곡, 300곡보다 더 좋은 곡이다"와 같은 극찬을 해 논란이 일었다. 어떤 경우에도 과찬은 금물이다. 섣부른 칭찬은 자족(自足)을 낳고 자족은 젊은 예술인의 성장에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 정체 기미를 보이는 한류(韓流)의 이면에 카리스마 남발과 같은 과찬과 자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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