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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가야 할 것들

세월의 여울이 크게 바뀌는 때를 맞았다. 새 천년과 21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2000년대라고 해서 1900년대와 다르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 생활에 질적인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조물주의 시각에서 보면 연대구분은 부질없다. 그러나 유한한 우리 인간으로서는 세기말과 세기초에 각별한 감회가 없을 수 없다. 쇄국왕조 시대에서 식민시대를 거쳐 남북 분단시대를 살아온 20세기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남한은 반만년 역사를 지배해온 절대적 빈곤의 멍에에서 벗어났다. 민주주의의 외형도 갖추었다. 아직도 세계인구의 3분의2는 절대적 빈곤 속에 살고 매년 1,800만명이 굶어죽고 있다. 불행히도 북한이 이런 제3세계에 속해 있다. 북한도 반만년의 멍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도와주면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21세기는 우리에게 남북통일 시대보다 국경 없는 세계화 시대의 의미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활동에 국경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해외로 나가 살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미우나 고우나 이 한반도에서 아옹다옹 살 것이다. 그렇다면 「더불어 잘 사는 선진사회」를 만들고 가꾸어나가는 것은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가 된다. 더불어 잘 사는 선진사회를 만드는 전략과 정책에 관해서는 각계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근한 예로 정책기획위원회와 새천년준비위원회가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는 「새 천년의 국가비전과 전략」을 보면 큰 그림이 그럴 듯하게 그려져 있다. 여기에서는 칼럼답게 작은 삽화를 그려보자. 그것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1900년대와 함께 우리가 버리고 가야 할 것들이다. 최소한 이것만은 털고 2000년대를 맞자고 제안하고 싶은 것들이다. 먼저 기업인은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경영을 버려야 한다. 부실공사나 불량식품과 같은 안전하지 않은 제품, 불공정거래행위, 회계분식, 오너의 제왕식 경영 등은 사라져야 한다. 노동계는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주라는 등의 어리광을 버려야 한다. 노조가 언제까지나 스스로 크기를 거부하는 「양철북」 소년일 수는 없다. 정치권은 「돈 먹는 하마」인 고비용정치와 헐뜯는 저질 정쟁을 버려야 한다. 위정자와 사법기관은 「사정」이라는 말 자체를 버리는 것이 좋다. 그릇된 것을 조사해 바로잡는다는 사정이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의 시녀에 의한 편파사정으로 오염됐다. 다른 말을 찾아 쓰면서 사법기관은 시녀와 편파 둘다를 벗어던져야 한다. 언론은 김수환 전 추기경이 말한 「소설을 쓰는 일」과 빌붙는 것을 버려야 한다. 교육계는 중·고등학생의 창의와 자발성을 가로막는 암기·입시 위주의 교육방식을 버리고 대학에서 빈발하는 예체능계·의약계의 부정을 일소해야 한다. 무릇 각 분야의 전문가를 포함한 공인들은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부정부패를 수용하는 도덕불감증을 버려야 한다. 임시방편으로 거짓말을 하고 『잠깐 빌렸다가 돌려주었다』는 식으로 둘러대는 것도 버리고 가야 한다. 시민단체는 팔방미인에다 선무당 노릇 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보통사람은 침 뱉고 담배꽁초 버리는 것을, 운전자는 이것에 더하여 새치기하는 꼴불견 버릇을 버려야 한다. 가진 자는 「내 맘대로」를 버리고 너무 바빠 불우이웃이나 북한어린이 돕기 한번 변변하게 하지 않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못 가진 자는 잘못된 것을 「네 탓」으로 돌리며 생떼 쓰는 풍조를 버려야 한다. 기본이 바로 서야 민생이 안정된다. 우리나라는 기본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민생이 피곤하다. 위에서 든 몇 가지를 버리면 기본이 어느 정도 서고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대부분을 사람들이 저절로 버리지는 않는다. 올바른 제도와 규칙으로 압박해야 없어지는 것들이다. 이래저래 정부와 정치권의 선도적 역할이 막중하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왜 항상 그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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