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짐승남,차도남에 이어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 뭇 여성의 사랑을 받더니 최신 경향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라고 한다. 그간 요리는 여자의 역할이라 여겨져 왔지만 1인 가구의 증가, 가부장적 가치관의 붕괴 등의 사회적 요인을 타고 요리하는 남자가 늘어난 결과다. 하지만 더 따져볼 일이다. 요리가 처음부터 여자의 일이었던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냥을 도맡았던 남자가 단백질을 비롯한 주요 영양소의 공급자였다. 죽은 동물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다듬는 것도, 이것을 먹기 좋게 요리하는 것도 한동안은 남자의 역할이었다. 요리하는 남자를 섹시하게 여겼던 것은 인류의 오래된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요리 역사가가 쓴 이 책은 요리가 인간과 동물을 구분짓는 여러 기준 중 하나임을 강조하며 첫 장을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요리는 20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의 등장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됐다. 농경문화가 확산되자 곡물은 당시 형성되던 도시,국가,군대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으로 부각됐다. 나아가 저장이 가능한 곡물은 부의 축적을 이끌었고 이는 권력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마군의 경우 다른 유럽 병사들보다 1,500년이나 앞서 회전식 맷돌을 도입했다. 3배나 빨리 곡식을 갈 수 있는 새로운 조리도구의 도입이 최강의 군대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는 18세기 대영제국의 전성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영국의 식량공급위원회는 선상에서도 완벽한 식사가 가능한 요리법을 찾아냈고 그 결과 영국 해군은 막강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저자는 요리의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기를 1880~1914년으로 보고 있다. 북유럽 국가와 유럽의 해외 식민지들, 미국·일본의 봉급생활 중산층 등이 당시 발전하던 식품가공산업의 소비자로 급부상했다는 점에서다. 식품가공산업은 흰 빵과 쇠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게 했다. 지배계층의 요리이던 이것들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자 개인의 정치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즉 햄버거가 전세계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보편적 음식이 되는 과정은 평등의식의 확산과 함께였고, 여기다 문화와 철학이 더해지면서 미국 고유의 음식이라는 상징성도 갖게 된 것이다.
저자는 요리가 진화되어 온 역사를 되짚어 강조하며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것은 단순히 충분한 칼로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요리와 관련된 선택과 책임, 품위, 즐거움을 확대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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