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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전산화] 주식매매 방식 변천사

딱딱이 매매서 음성주문으로우리나라에서 주식이 처음으로 거래된 것은 1920년8월. '경성주식 현물취인소'라는 가건물이 설립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 시장은 법률적ㆍ제도적 보장이 이뤄지지 않아 거래체결을 두고 중계인과 투자자 사이에 잦은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었다. ◆ 1932년, 조선취인소시대 개막 조선취인소가 법에 의해 설립되면서 제도적인 틀 안에서 최초의 주식거래가 이뤄졌다. 주식거래는 신원보증금을 납부하고 자격증을 얻은 30명의 거래인이 주도했다. 자격증은 받기가 어려워 상속하기도 했다. 당시의 주식거래는 선물(先物)거래와 비슷했다. 주된 매매방식인 단기거래는 3개월 기한의 선약거래였다. 3개월 후의 주식을 말로만 사고파는 방식으로 실물은 매월말에 한번 주고받았다. 당시 주식투자도 주가의 움직임을 예상해 매매하는 투기적 성격이 강했다. 거래가 이뤄진 상장주식은 1,2,3부에 있는 18종목. 주거래 종목은 6개였다. 모두 자본금 100만원 이상으로 총독의 인가를 받은 기업이었다. 거래는 하루에 두번 오전 9시30분부터 11시까지, 그리고 오후 1시30분부터 3시까지였다. 거래는 10주단위로 이뤄지고 증거금은 주식마다 다르게 정해졌다. 투자자는 거래인을 찾아가 매매를 의뢰하고 거래금액에 따라 수수료를 지불했다. ◆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설립, 집단경쟁매매 시작 현대적 의미의 주식매매는 증권사들이 모여 만든 증권업협회에서 시작됐다. 매매방식은 집단경쟁매매제도. 협회 회원사인 증권사 직원이 거래소를 찾아가 경매를 통해 주식을 사고 팔았다. 거래가 체결되면 '딱딱이'라는 격탁을 쳐서 거래성립을 알렸기 때문에 격탁매매라고도 부른다. ◆ 1971년, 포스트(개별경쟁)매매 시작= 격탁매매는 거래종목과 거래량이 크게 늘면서 한계에 부닥쳤다. 대신 등장한 것이 포스트매매. 격탁매매가 한 장소에 모여 종목별로 차례대로 경매했다면 이 방식은 장소를 나눠서 여러 종목을 동시에 경매에 붙이는 개별경쟁매매로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종목을 거래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사고 싶은 종목의 수량과 가격을 적어 증권사에 주문을 내면 증권사는 이것을 모아 거래소에 내고 거래소에선 주문을 받아 집계장에다 기재해 '가격우선ㆍ시간우선의 원칙'에 따라 거래를 성립시킨다. 호가우선, 시간우선의 원칙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 1988년, 매매체결 전산시스템 가동 증권시장이 급팽창하면서 89년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 돌파를 전후에 거래주문이 폭증했다. 88년 3월 매매체결 전자시스템인 공동온라인망을 가동해 컴퓨터로 주문을 넣고 자동매매체결이 이뤄지면 그 결과를 시스템으로 전송받는 체계를 확립했다. 소요시간은 3~10초. 그러나 90년10월5일 하루 주문건수가 48만건으로 매매체결시스템으로 매매를 처리해도 후장 종료 후 체결이 4시간까지 지연되는 등 처리능력에 한계를 보였다. 이후 정보통신ㆍ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도 개선되면서 현재는 음성으로도 주문을 낼 수 있게 됐다. 우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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