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정책을 추진했던 대원군이 물러나고 얼마 뒤 1876년 운요호 사건이 터지면서 일본과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맺고 우리나라는 외국에 문을 열었다. 일본 역시 그에 앞선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의 대포소리에 놀라 미일 수호조약을 체결, 어쩔 수 없이 쇄국정책을 포기했다. 하지만 강제로 개방시대에 접어든 두 나라의 운명은 이후 완전히 달랐다. 개방 앞에 우물쭈물했던 우리나라는 치욕적인 식민지배 시절을 겪어야 했으나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적극적인 개혁ㆍ개방에 나서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때부터 1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외개방 측면에서 일본은 항상 우리나라를 앞섰다. 그러나 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면서 한국의 개방 역사는 전혀 다른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한미 FTA가 경제구조와 사회ㆍ문화 분야 등에서 한국경제의 탈(脫)일본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 유력지 중 하나인 마이니치신문도 지난달 23일자 기사에서 “한미 FTA를 통해 한국이 미국시장 확보 및 한국경제의 탈일본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경계감을 나타낸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우리나라는 극심한 대일 역조에 시달려왔다. 지난 2000년 114억달러 수준이던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해 244억달러로 오히려 2배 이상 증가했다. 대일 적자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무역수지 흑자(235억달러) 규모보다도 크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휴대폰ㆍLCD 등을 힘들여 많이 팔아도 높은 부품ㆍ소재 의존도로 인해 일본만 득을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푸념했다. 정부는 FTA를 통해 우리나라의 세 번째 부품ㆍ소재 수입국이자 상당한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이 일본업계를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관세철폐에 따른 가격인하 효과 등으로 미일이 경쟁하고 있는 기계류 부품 등은 일본의 점유율이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먼저 돛을 올렸으나 한일 FTA가 무기 연기된 데 비해 한미 FTA는 성사 가능성이 높은 상황도 대일 의존도 낮추기에 플러스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다. 또 FTA 경쟁에서 후발주자로 일본에 밀리기만 했으나 미국과의 FTA 추진이 힘을 받으면서 전세도 역전됐다. 일본 역시 미국과 FTA를 추진했으나 미국 내 사정 등으로 불발된데다 아세안과의 FTA 추진도 오히려 우리나라에 뒤처지고 있는 것. 김종훈 한미 FTA 우리측 수석대표는 “미국뿐 아니라 아세안과의 FTA도 우리가 일본보다 2년 정도 앞서 나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일본은 ‘한미 FTA 타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이런 이유 때문에 외교채널 등을 통해 한미 FTA 추진 과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한미 FTA가 저절로 대일 의존도 하락과 선진형 산업구조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기술력, 지정학적 위치, 기존 사업관계 등을 고려하면 FTA만으로 정부 기대처럼 구매선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전환될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정재화 무역협회 FTA 팀장은 “한국과 미국의 기업간 협력이 FTA를 계기로 더욱 활발해지도록 이동의 자유를 높이고 미국의 거대 벤처캐피털 등을 통해 자본유치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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