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은 사석에서 대기업 구조조정 얘기가 나올 때마다 현대그룹을 칭찬했다. 힘겨웠고 반신반의했는데 당초 계획의 100%가 넘는 구조조정 실적을 낸 데 대해 금융당국조차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 임직원에게 보내는 메시지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현 회장은 올 초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직원들과 시무식을 열어 "현재의 상황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마음을 새롭게 일신하자. 변화와 위기 이면에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까지는 위기에서 살아남는 생존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지만 앞으로는 위기에서 기회를 모색해볼 수 있을 정도로 사정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는 지난 2013년 내놓은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1년여 만에 끝내며 그룹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군살을 빼는 데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가벼워진 몸으로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수 있게 된 셈이다.
더욱이 올해는 지금의 현대그룹을 만든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이다. 20일에 있을 정 회장의 제사를 찾을 현 회장의 발걸음도 한층 가벼워질 수 있게 됐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숙원인 대북사업을 본격적으로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등 주력사의 실적을 본궤도에 올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목표 125%+α=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벌크선 및 전용선 부문과 반얀트리호텔 매각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13년 말 발표한 자구안에 포함됐던 것으로 벌크선은 라자드코리아가 매각 주관을 맡았다. 벌크선 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부는 지난해 6월 팔렸고 이번에는 철광석과 석탄 같은 고체류 운송 부문을 매각하는 것이다.
반얀트리호텔은 아직 사겠다는 곳이 없어 매각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구체적인 인수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자구 목표를 달성한 만큼 신중하게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현대는 지난 1월 말 현대증권과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 금융 3사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하며 자구안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앞서 현대는 LNG 운송사업부문 매각으로 9,700억원을 확보했고 △현대부산신항만 투자자 교체 2,500억원 △컨테이너 매각 1,225억원 △보유 주식매각 1,713억원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1,803억원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6,000억원에 기타 자산 매각, 비용 절감 등 총 2조8,000억원을 마련했다.
여기에 금융 3사 매각 대금이 1조800억원대로 추정되고 25일 현대상선 유상증자로 약 2,400억원이 들어오면 4조1,000억원을 웃돈다. 목표치의 125%에 달한다.
◇'위기 탈출', 이제는 실적=현 회장은 지난 15개월간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남은 과제는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현대아산 등 계열사의 실적 회복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07년 이후 8년째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5.6% 증가한 1,338억원, 당기순이익은 50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엘리베이터 수요도 증가세여서 당분간 실적 개선세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관건은 현대상선이다. 상선은 사업부 매각과 자본 확충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됐지만 2010년 이후 줄곧 적자다. 세계 경기침체로 시장 전망도 밝지 않다. 다만 유가 하락으로 연료비가 줄어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 주익찬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떨어지며 영업이익 5,000억원이 증가하는 효과가 예상된다"며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아산의 경우 금강산 관광사업을 비롯한 대북 사업 재개가 핵심이다. 고(故) 정 회장이 생전에 애착을 갖던 분야로 현 회장도 노력하고 있지만 외부 변수가 워낙 많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현 회장이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지만 이제는 실적 회복을 통해 경영능력을 입증할 때"라며 "1955년생 양띠인 현 회장에게 제대로 된 시험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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