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개원한 국회가 대법관 임명 동의 표결 문제로 또 난관에 봉착할 듯하다. 정치적으로는 지금까지 봐온 수많은 청문회의 하나로 여겨질지 모르나 이는 우리가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가치관에 관한 문제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문제가 되고 있는 후보자는 위장 전입 2건, 세금 탈루 3건, 다운계약서 3건의 위법 사실을 본인이 시인, 사과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그만하면 됐다, 안 된다 하며 정치적 협상을 벌이는 게 씁쓸하다.
세계 14위의 경제 대국으로 세계 무대의 주도국이 됐으면 가난하고 못살던 시대의 습관과 관습을 바꿔야 한다. 사회의 책임 있는 사람과 힘 있는 사람 등 윗물이 먼저 맑아져야 한다. 서민들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저러한데 나 정도야'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능력이나 효율을 앞세워 웬만한 잘못은 누구나 하는 실수로 덮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 기업 간에도 투명성ㆍ정직성ㆍ진실성 등이 경쟁의 도구가 되는 시대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정착하는 데 발목을 잡힌 것도 이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지수 종합순위는 22위로 최근 많이 나아졌다. 국가경쟁력 상승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제도 부문이다. 점수로는 3.9점, 등위는 65위로 하위권이다. 불법 거래나 뇌물수수 등의 부문이 49위로 등위 하락에 한몫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청렴도를 나타내는 부패지수(CPI)를 봐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난 2008년 10점 만점에 5.6점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5.4점으로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6.9점임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부패는 경제적ㆍ사회적 비용을 증대시켜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 비용은 상대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청렴도를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하면 경제 성장률을 0.65% 정도 높일 수 있다고 하니 요즘처럼 잠재 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는 시기에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최근 그리스의 추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리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000달러에 달해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다. 대부분 그리스가 복지 지출이 과다해 파산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외에도 부정부패가 국가 파탄에 큰 몫을 담당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를 보면 그리스는 2000년 35위이던 부패지수가 2011년 80위로 추락했다. 죽은 사람에게 연금이 지급되고 공무원이 이중 직업을 갖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지표로 나타난 듯하다. 국가가 부채보다 더 심각한 부패의 늪에 빠진 꼴이다.
작금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한때 정권의 실세라던 분들이 수뢰 혐의로 줄줄이 기소되고 서민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던 저축은행 대주주ㆍ경영진이 엄청난 규모의 돈을 호주머니 돈처럼 사용하다 기소됐다. 심지어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 고위 간부들은 원전의 핵심 부품까지 짝퉁을 사용했다니 그리스가 남의 나라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이제는 학교나 가정ㆍ사회에서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다. 남의 눈을 속이고 적당히 거짓말하며 약삭빠르게 사는 사람보다 정직하게 산 사람, 열심히 노력한 사람,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을 따라잡느라 '빨리 빨리'가 우리의 별명이 됐지만 이제 바꿔야 할 때다. 그리고 이제는 '모로 가서 서울에 도착하면 안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바른 길을 따라 서울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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