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지수가 7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원화 절상)했다. 올 들어서만 약 20개국이 통화 완화책을 내놓으며 각국 화폐가치가 절하, 원화가치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지난해 수출증가율이 30년 새 네 번째로 경제성장률에 못 미치고 올 1월도 삐걱대는 가운데 실질실효환율까지 급등하면서 수출 전선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23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지난 1월 현재 114.4포인트로 2008년 2월(118.8) 이후 가장 높았다. 이 지수는 각국의 통화가치 변동과 교역비중·물가상승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출한다. 1개월 단위로 공표돼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원·달러, 원·엔 환율 등에 비해 속보성은 떨어지지만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제일 정확히 보여준다. 2010년(100)을 기준으로 하며 수치가 높을수록 그 나라 화폐가치가 절상됨을 의미한다.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는 현재보다 30포인트나 낮은 80포인트대까지 하락(원화가치 절하)해 우리 수출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지난해 6월에는 112포인트까지 치솟았다. 당시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8원50전까지 내려가 세자릿수 진입을 눈앞에 뒀던 시점이다. 이후 당국의 '원·엔 동조화 발언'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자 실질실효환율도 하락했지만 올해 1월 다시 급등했다.
이는 세계 각국이 앞다퉈 금리 인하에 나서며 화폐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는 탓이다. 올 들어 2개월 동안 20여개국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미약한 국내 경기회복세를 높이고 디플레이션 우려를 떨치며 화폐가치 절하로 수출경쟁력까지 갖추려는 포석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1월 실질실효환율은 91.3포인트으로 2002년 5월(89.96포인트) 이후 13년 만에 최저로 떨어(유로가치 절하)졌다. 일본도 70.8포인트로 지난해 말보다는 높아졌지만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4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반면 각국의 화폐가치가 절하되자 원화가치는 상대적으로 절상됐다. 2010년 대비 14.4%나 절상됐는데 주요국 중 원화보다 가치가 오른 곳은 중국(28.4%), 홍콩(20%), 필리핀(17.4% 뿐이었다. 스위스프랑은 12.9%, 미국 달러화도 7.41% 오르는 데 그쳤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금융연구실장은 "지난해 수출증가율은 2.8%로 경제성장률(3.3%)보다도 낮았다"며 "수출증가율이 성장률보다 낮은 것은 지난 30년 동안 세 차례밖에 없을 만큼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수출증가율이 성장률보다 낮았던 적은 1989년과 2001년, 2009년뿐이었다. 1월 일평균 수출액도 전년 대비 8.1%나 줄었다.
그는 "원화의 미국달러 대비 환율은 큰 변화가 없지만 실질실효환율은 절상되며 우리 수출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근거로 금리 인하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박 실장은 "현재의 금리 수준을 보면 추가 인하가 가능한 폭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부작용과 기대효과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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