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역사를 바꾼 근대과학기술인 - 고(故) 최형섭 박사에게 드리는 弔辭 이 땅 과학기술 근대화의 대부 최형섭 박사가 가셨다. 그의 족적이, 헌신이, 모범이 너무 크셨기에 우리 가슴 깊은 곳에 갑작스런 공허를 느낀다. 최 박사는 완벽한 한국 근대과학기술인이셨다. 학력, 연구, 연구기관 창립자, 연구소 및 과학기술 행정가. 이 모두가 완벽한 어른이셨다. 그는 그의 생애에 주어진 근대라는 시간과 장(場)이 마련한 그 운명을 따라 일본에서 학부과정을 미국에서 석ㆍ박사과정을 마친 그 시대 과학기술자가 되기 위한 전형적 교육과정을 거쳤다. 그러면서도 과학엔 국경이 없으나 과학자에게 국적이 있다는 진실을 가장 몸소 체현하셨다. 그가 몸담고 창립하신 기관들, 원자력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과학기술재단 등은 바로 이 나라 과학기술 근대화의 상징기관들이다. 특히 KIST와 KAIST는 한국형 과학기술 근대화 즉 과학기술인력양성과 연구방식의 개척이었다. KIST 창립과 운영의 성공은 전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최형섭 박사의 합작품으로 과학입국의 표상으로 남아있고 계속 한국과학기술 근대화의 산실로 정체성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최 박사의 열성과 정성이 없었더라면 재미과학자 유치라는 당시로서는 지난한 최초의 실험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KIST가 국책연구소의 성공적 모델로 KAIST가 과학기술교육의 성공적 모델로 이땅의 과학기술 근대화의 상징이 된 데는 모두 최 박사의 심혈이 담겨있다. 상공부 광무국장, 과학기술처 장관 등 정책결정자로서의 최 박사의 독특한 위치는 더욱 그를 완벽한 한국 근대과학기술인으로 만들었다. 7년6개월이라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장수 국무위원을 역임하신 최 박사는 국적이 있는 과학기술자로서 과학기술정책의 근대화 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두 분만이 상의한 많은 국사(國事)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 박사의 위대한 점은 근대과학기술연구와 교육기관의 개척자로서, 과학기술정책결정가로서 뿐만 아니라 끝내 철저하고 우수한 연구자였다는데 있다. 화학야금학자로서 말년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연구를 지도하셨고 그의 연구업적도 탁월한 모범이셨다. 한국의 경험을 기초로 한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개발전략’ 등 역사적 저서도 남기셨고 이런 경험의 정리를 토대로 타이 등 후진국 과학기술정책을 자문하셨다. 그의 넓고 깊고 철저한 업적과 족적은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생전에 영예를 누리시는 복도 받으셨다. 한국의 역사를 바꾼 과학기술인에게 드리는 당연한 보상이다. 순수와 경쟁을 잃어버린 연구자들을 가차없이 나무라던 ‘과학기술인 다움’에 철저하셨던 최 박사가 더욱 그리워지는 이 난세에 훌쩍 저승으로 가셨으나 하늘에서도 이땅의 과학기술인들에게 ‘연구하라’ ‘절제하라’ ‘세계와 경쟁하라’ 는 호령은 계속 하실 것을 의심치 않는다. 1966년 박정희ㆍ존슨 공동성명에서 나온 KIST 설립취지를 최초로 발견, 평가했던 언론인으로서 24년 뒤 최초의 비(非)과학자 출신 과학기술처 장관이 된 저를 큰 인연으로 받아주시고 충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최형섭 선생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 김진현 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사장 전 과학기술처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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