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성장)-고점-축소(침체)-저점’을 반복해온 우리 경제의 경기순환 과정이 순환 주기 축소와 함께 진폭(높낮이)마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급속한 성장과 골 깊은 하락세가 이어져온 과거 우리 경제의 ‘롤러코스터형 순환국면’이 지난 2000년 이후부터 성장세와 침체 정도가 모두 크지 않은 ‘만성형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이다. 결국 한국 경제가 가용능력에 해당하는 잠재성장률의 저하를 계기로 과거의 7%대 고성장도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마이너스 성장률까지 우려할 정도의 경기하락도 없이 맨송맨송하게 유지되는 ‘노인형’으로 바뀐 셈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이 같은 현상을 빗대어 “한참 왕성해야 할 때 성장동력이 없어지면서 ‘경제의 혈압’이 젊은이의 ‘120-80형’에서 ‘80-30형’의 노인형 저혈압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경기 진폭 1~2%로 급강하=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경기순환은 ‘경제 성적표’에 해당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나 현재 경기의 정도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흐름에서 가장 쉽게 드러난다. GDP 성장률의 경우 90년대 후반~2002년까지만 해도 7~10%대 성장률과 최저 마이너스 성장률을 오가는 냉온탕 국면을 보였지만 2003년 이후로 3~4%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간으로 따지면 5~10%를 오가던 성장률의 연간 진폭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3~5% 정도로 현저히 낮아졌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2001년 3.5%의 성장률에서 2002년 이내 7%의 고성장으로 움츠러든 개구리가 팔짝 뛰듯이 생동감이 넘쳤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 다시 3.7%로 급강하했지만 이듬해에는 생기를 찾지 못한 채 4.7%의 성장률에 머물렀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다시 4.0%로 내려앉았지만 매년 경기의 진폭은 예전 3~4%의 진폭에서 1%에서 기껏해야 2%도 안되는 높낮이로 변해버렸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같은 추이로 볼 때 올해 성장률도 5% 언저리에 머물고 내년에도 4% 중반대에 머무는 등 연간 성장률의 진폭이 점차 잠재성장률에 수렴하는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지표들의 진폭도 낮아져=성장률의 높낮이 폭이 작아진 것은 여타 경제지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경기 순환곡선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경우 90년대 순환과정에서 고점은 100을 훌쩍 넘고 저점은 90대까지 내려갔던 추이가 2000년 이후로는 간극이 극히 좁아지고 있다. 경제성장의 8할을 차지하는 수출증가율의 추이 변화 역시 이 같은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과거 수출증가율이 정점을 친 후 하락할 경우 증가율 둔화폭도 큰 폭으로 나타났지만 최근 수출지역이 다변화되면서 수출증가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현상은 피해가고 있다는 것. 김세중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수출증가율이 피크를 치고 하락하기 시작하면 증가율 둔화폭이 비교적 크게 나타났고 종국에는 마이너스(수출감소)로 돌아서는 것이 빈번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수출지역 다변화와 중국의 고성장 유지로 수출증가율의 저점이 마이너스가 아닌 한 단계 상향 조정된 플러스권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 혈압 급격 저하=정문건 전무는 “경제의 사이클이 신체의 심전도와 같다면 경기의 진폭은 혈압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는 경기 정점에서 경기 불황으로 변하는 것이 10%에서 5% 범주에서 움직였지만 최근에는 5%에서 4% 정도로 낮아졌다”면서 “경기의 혈압이 그만큼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의 사이클이 짧아지는 것이 심장의 기능이 옛날처럼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진폭이 작아진 것은 경제의 체질이 그만큼 노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배상근 연구위원은 “IT나 자동차 등 주력산업이 중심을 잡고 있어 못해도 기본은 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신성장 동력이 나오지 않아 경기의 사이클을 이용하면서 불황에서 호황으로 바뀔 때 회복세를 쭉 끌어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전무는 “1인당 GDP가 3만달러에 이르기도 전에 중장년층의 혈압으로 바뀌는 모양새”라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정책의 패턴부터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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