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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고종, 美공주에 사진을… 안타깝다
대한제국 비운의 역사… 흑백 사진으로 만나다■ 덕수궁미술관 '황실의 초상'전루스벨트에 보낸 고종 초상영친왕 부부·국장행렬 등원본사진·자료 200점 전시
조상인기자 ccsi@sed.co.kr
1800년대 후반에 촬영된 고종과 순종의 사진.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그의 웃음은 특히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서 있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그가 격식을 차려 표현하는 말 속에서 진심으로 나와의 만남을 기뻐하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초의 어(御)사진을 촬영한 미국의 퍼시벌 로웰(1855~1916)은 1888년에 쓴 기행문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이 같은 말로 1884년에 만난 고종 황제를 기억했다. 일본의 메이지 천황이 사진 찍기를 싫어했던 것과는 달리, 고종은 사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1905년에 촬영된 사진에서는 고종이 황제를 상징하는 황룡포에 서양식 훈장을 달고 옥좌에 앉아있다. 대한제국이 근대의 황제국임을 이 사진을 통해 선포하고 있다. 고종은 일본의 위협으로 불안한 정치상황을 타개하고자 1882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미국의 도움을 기대했고, 이에 내한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인 '미국의 공주' 앨리스 루스벨트에게 자신의 사진을 하사했다. 안타깝게도 고종은 당시 미국 순방단이 도쿄에서 미국의 필리핀 통치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체결하고 돌아가는 길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조선 황실의 비운의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1880-1989'전시회가 16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다. 황실인물들의 모습과 행적이 기록된 다양한 사진자료를 통해 파란만장했던 조선 말의 근현대사를 목격할 수 있는 자리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한미사진미술관을 비롯해 국립고궁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스미스소니언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의 협조를 받아 200여점의 사료를 모았다.
고종이 루스벨트에게 선물한 초상사진의 원본은 무려 10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공개됐다. 반면 명성황후는 분명하게 증명된 초상사진이 전해지지 않는다. 미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 "왕후는 가냘프고 미인이었다… 나는 그녀의 기묘한 정치적 영향력, 왕 뿐 아니라 그 외 많은 사람들을 수하에 넣고 지휘하는 통치력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지만 사진의 행방은 묘연하다.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인물 사진은 진위논란을 빚기까지 했으며, 이번 전시에는 관련 논쟁도 소개됐다.
황실의 장례사진은 국권 침탈이라는 결말로 귀결된 시대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고종의 국장행렬을 바라보는 조선인들의 비통한 모습에선 당시 고조되던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전하려는 시각이 드러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과 일본 황족인 부인 이방자 여사의 부부사진도 다수 전시됐다. 갓난 아들을 안은 이들의 모습은 국가적 갈등상황은 상관없는 듯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다. 고종이 환갑에 낳은 고명딸 덕혜옹주는 조선총독부의 강요로 일본으로 보내졌고 일본인과 정략 결혼을 해야 했다. 풍성한 웨딩드레스와 한아름 꽃다발을 안은 덕혜옹주의 결혼사진은 화려한 듯 하지만 비극적인 미래를 암시한다. 이 외에도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 의친왕의 아들 이건과 이우 등 일제강점기에 기구한 삶을 산 황실 후예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흑백사진 속 황족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역사 속에 살아있는 사람들이며, 그 모습이 바로 우리 역사의 초상임을 일깨우는 전시다. 내년 1월13일까지. (02)2188-6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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