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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가격의 공포

지난 1998년 1월 서울의 도로에서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광경이 연출되었다. 교통지옥으로 이름나 있던 거리에서 자동차 행렬이 일거에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IMF사태로 환율이 뛰어 오르고 그 여파로 휘발유 값이 일거에 두 배 이상 오른 데 따라 일어난 현상이었다.온갖 지혜를 다 짜내도 백약이 무효였던 교통대란이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듯 싶었다. 국가부도라는 긴장감이 연출해 낸 현상이지만 경제학적 설명으로는 「가격의 공포」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하긴 1974년과 1979년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통해 톡톡하게 국민들은 수업료를 지불했다.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동자부가 신설되는가 하면 이런 저런 정책이 예산을 퍼 들여가며 실시되었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도 이렇다 할 효험이 없다. 2차 오일쇼크가 났을 때 당시 동자부 장관이었던 P씨는 이렇게 말했다. 『에너지를 10%만 절약해도 연간 7~10억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집중력이 약하다. 오히려 누가 10억달러의 외채를 끌어 왔다하면 개선장군이 되는 풍토다. 정책을 이끌어 가는 내부환경도 그렇고 외채관리에 대한 철학의 빈곤도 그러했으니 에너지 낭비형 틀이 개선될 리가 없다』 워낙 정치 현안에 묻혀 이슈가 되지 못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유가문제에 대해 중요한 언급을 했다. 지난해부터 오르고 있는 유가가 물가를 자극할 것으로 판단되면 세율 인하를 통해서라도 가격안정을 꾀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물가 상승률을 3% 넘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좋게 볼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시장경제」라는 이념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가격정책에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정치적 유혹 때문에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게 돼 있다. 아무래도 총선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국제석유 값이 올라도 「휘발유 값은 안정시킨다」고 해야 표를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은 진부하지만 역대 정권의 모범답안이었다. 국제기름 값을 시장가격에 반영, 고유가 정책을 쓴다는 건 정치적 모험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큰손들」인 정유업자도 자동차 업자도 고유가 정책을 달가워하지 않을 터이다. 언론도 마찬가지일 게다. 입에 쓴 약이 효험이 있는 줄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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