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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지킬 '新 노아의 방주' 구축한다

'작물종자 수집가'들 수백만종 씨앗 모아 저장고에 보관<br>병충해 등으로 멸종작물 많아 식량대란 우려<br>수집가들 GCDT·FAO등서 지원받아 목숨건 활동<br>확보한 씨앗은 건조·포장후 국제 종자 저장고로

에티오피아의 숄라 시장에서 팔리는 잇꽃 씨앗. 에티오피아에서도 작물의 다양성을 보존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작물 씨앗을 수집하고 있는 루이지 주아리노 박사.

캔 스트리트 박사가 아르메니아에서 밀 씨앗을 수집하고 있다.

의식주(衣食住)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 요소다. 그 중에서도 식(食), 즉 식량은 인간의 생명과 직결돼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 식량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병충해, 가뭄 등에 의해 작물의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바로 이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작물 종자 수집가'들이 그 주인공. 이들은 전 세계의 오지를 돌며 수십~수백만 종의 작물 씨앗을 일일이 수거, 특수 저장고에 저장한다. 이렇게 모아진 종자는 미래에 닥칠 식량난에서 인류의 생명을 지켜줄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하게 된다. 멸종 위기에 처한 작물 현대 농업에서 작물은 가능한 적은 땅에서 얼마나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는지 여부, 즉 생산성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구의 증가에 따라 매년 광활한 토지가 도시화되면서 식량을 생산해야할 수많은 농토들이 빌딩 숲으로 급속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생산성 우선주의로 인해 인류가 지난 수 천 년 간 의존해왔던 수많은 작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출량이 많은 종(種)들의 파종은 확산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종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있는 것. 더욱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 쌀, 보리, 밀 등 작물의 종류에 따라 몇몇 우수 품종으로 유전적 특성이 동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물 또한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종의 다양성, 유전적 다양성이 확보돼야만 환경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년간 미국에 존재했던 작물 중 무려 75%가 상업성에 밀려 완전히 멸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살아남은 품종들도 병충해, 가뭄, 지구온난화 등 외부 환경변화에 대한 내성이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가고 있어 언제 멸종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농업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수 백 년 뒤에는 일부 품종을 제외한 대다수 작물 종이 멸종할 수 있으며, 종국에는 전 지구적인 식량 대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씨앗 사냥꾼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작물의 멸종을 막고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노력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씨앗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농작물 종자 수집가다. 작물학자․식물학자․생물학자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수 십 여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각국 정부나 국제곡물다양성신탁(GCDT)․식량농업기구(FAO)․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CGIAR) 등 국제단체의 지원을 받아 전 세계에 생존해 있는 작물의 씨앗을 수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종자 수집이 주요 업무이니 만큼 이들은 틈만 나면 각국의 오지와 험지를 찾아다니는 것이 일이다. GCDT에서 활동 중인 루이지 주아리노 박사도 그중 한사람. 밀에 정통한 그는 이미 시리아, 에티오피아, 중앙아시아 등을 돌며 수 십 여종의 야생 종자를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루이지 박사는 "하루만 늦어도 특정 종의 작물이 멸종을 맞을 수 있다"며 "때문에 종자 수집가들은 새로운 씨앗을 구할 수 있다면 도서산간은 물론 전쟁터와 같은 위험지역 탐사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호주의 농업생태학자인 캔 스트리트 박사는 혹독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한 야생 병아리 콩 확보를 위해 이라크 접경지역인 터키 남동부와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이란의 카스피해 남부를 다녀왔으며, 지금은 정치 불안에 휩싸인 그루지야로의 출발을 앞두고 있다. 국제열대작물센터(CIAT)에 소속된 대니얼 드보크 박사의 경우 고대 도자기에 그려진 야생 리마 콩을 찾아 30여 년간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들과 산을 뒤진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 십 여명의 러시아 과학자들이 독일군으로부터 씨앗을 지키기 위해 종자 저장고의 문을 잠그고 버티다 굶어 죽은 실화는 이들의 투철한 사명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新 노아의 방주 이처럼 종자 수집가들이 목숨까지 내걸어가며 확보한 씨앗들은 건조와 특수포장 공정을 거쳐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와 같은 대규모 국제 종자 저장고에 보관된다. 수백 년이 지난 먼 미래에 그 어떤 과학적 노력으로도 작물의 멸종을 막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신(新)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그런데 이미 각 국가별로 1,400여개에 달하는 종자은행 및 유전자은행이 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GCDT 등이 굳이 별도의 대규모 국제 종자 저장고를 보유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지구상에서 생물학적 다양성이 가장 풍부하게 나타나는 곳 대부분이 가난한 국가에 속해 있어 저장된 씨앗의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지적 종자은행은 태풍, 홍수, 전쟁 등에 의해 소실될 우려도 크다. 실제 지난 2003년 이라크의 국립유전자은행이 미군 공습으로 파괴된 바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은 1990년대 무자헤딘과의 전투로 보유중인 모든 씨앗을 잃어버렸다. 지난해에는 태풍이 필리핀의 유전자은행을 덮쳐 엄청난 숫자의 고구마, 토란, 바나나 종자들이 강물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GCDT의 캐리 파울러 이사는 "수집한 씨앗을 얼마나 잘 관리하는가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듯 보관 중인 씨앗의 미래는 인류에게 달려있다"며 국제 종자 저장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종자 수집가들은 자신들의 이 같은 노력이 결코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노력이 빛을 발한다는 것은 곧 인류에게 대재앙이 닥쳤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CIAT의 드보크 박사는 "국제 종자 저장고에 보관된 씨앗들이 영원히 반출되지 않는 것이 모든 종자 수집가들의 희망"이라며 "이 일을 하면서 생긴 유일한 바람은 후대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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