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 정상들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대응 방안에 합의하면서 자본시장이 잠시 안정을 되찾자 유럽 은행들의 채권발행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며칠 사이 유럽 은행들의 선순위 무담보채권 발행이 잇따랐으며 이는 2ㆍ4분기 동안 발행된 물량보다 많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으로는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이 17억5,000만달러 규모의 선순위 무담보채권 발행에 성공했고 이탈리아의 인테사상파올로와 덴마크의 단스케방크도 동일 채권발행을 통해 각각 1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구제금융설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인테사상파올로가 채권발행에 성공한 것은 재정위기 주변국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됐음을 의미한다고 FT는 분석했다.
이처럼 유럽 은행들이 채권발행에 적극 나선 것은 최근 자금조달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오래 가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장여건이 악화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키언 애보호세인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채권발행시장의) 문이 오래 열려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최근 은행들이 자금조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주 개최된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가 주변 국가 및 은행권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불안감은 사그라지고 있다. EU 정상들은 재정위기 국가와 은행 간의 악순환을 차단하고 스페인 은행권에 유로존 구제기금을 직접 지원하는 은행들을 감독할 단일 은행감독기구를 창설하기로 했다.
채권발행시 가산금리가 낮아지면서 발행비용도 감소했다. 시장조사기관인 마킷에 따르면 유럽 선순위 은행채 5년물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스프레드는 지난달 28일 EU 정상회의 개최일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했다. 통상 채권을 발행할 때 기준금리에 CDS 스프레드를 가산금리로 추가하기 때문에 CDS 스프레드가 낮아지면 발행비용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EU 정상들의 합의사항이 이른 시일 내 이행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채권분석 책임자 스티브 허시는 "EU 국가들이 조만간 조화를 이루는 규제 시스템을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지난주 EU 정상회의의 실효성을 확인하기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의 은행담당 애널리스트 후 반 스티니스도 "(재정이 건전한) 북유럽 은행들과 (위기국가가 몰려 있는) 남유럽 은행들 간 자금조달 비용의 차이는 매우 크며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경 간 대출이 계속 줄고 은행들이 국내시장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이 같은 경향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긍정적인 모멘텀이 이어지려면 EU 정상회의 합의사항의 신속한 이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적인 경기부양, 장기적 차원의 경제성장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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