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태스킹·성과 강요
신자본주의 노동 문화가 정서적 소진·무기력 불러
고용주와 맞서 근로조건 등 적극적으로 개선 이뤄내야
'일에서 행복 찾기' 가능
독일의 신경생리학자인 저자는 과중한 노동과 성과에 대한 압박 등에 기인하는 현대사회의 병리학적 증상-대표적으로 번아웃(탈진) 증후군-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기에 앞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실제 독일 전체 고용인구의 84%가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응답했으며, 70%가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유롭다 하더라도 일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직은 노동자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고, 조기 은퇴자는 현업에 있는 사람에 비해 평균 수명이 크게 짧아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노동의 딜레마다. 노동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병들게도 하지만 행복의 원천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 노동에는 문제가 더 많다. 노동자들은 일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병을 얻을 확률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저자는 1980년대 이후 너무도 달라져 버린 노동환경에서 원인을 찾는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우리의 몸은 특별한 과제가 없거나 긴장할 일이 없을 때 의학적으로 '항상성'이라 불리는 균형 상태에 있고, 꼭 처리해야 하는 구체적인 과제가 생겼을 때 호흡·순환계가 활성화되는 '신항상성', 즉 스트레스 상태로 전환된다. 하지만 과제가 끝난 후 '항상성' 상태로 돌아와야 할 몸이 끊임없이 주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과제로 인해 계속 '신항상성' 상태에 머무른다면 몸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현대사회는 우리가 한 가지 과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 상황에서 주변을 끊임없이 주시해야 하고 있어야 할 때 우리는 새로운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학계에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불안-스트레스 체계)'라고 지칭하는 이 스트레스는 원시인들이 맹수의 공격을 견제하듯 주변의 위험과 자극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장기간 과도하게 활성화된 상태로 있으면 집중력과 인지능력이 손상될 뿐 아니라 여러 정신질환의 발생 가능성까지 현격히 높인다고 말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신자본주의 문화에서 일상적으로 관찰되는 '자기 착취의 폭력'도 원인 중 하나다. 현대 노동자들은 성과에 집착하며 한없이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고용주의 무리한 요구에 부응해 자신과 일을 동일시하며 성과를 내려고 점점 더 노력의 강도를 높인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명제에 지배된 노동자의 몸은 더 이상 작동을 멈출 수 없는 기계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대인들은 번아웃 증후군에 빠진다. 대표적 증상은 지속적인 정서적 소진, 업무·고객에 대한 극복하기 어려운 혐오와 냉소, 업무 효율성 상실. 간혹 우울증과 혼동해 사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저자는 둘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우울증은 개인적 측면에서도 발생할 수 있지만 번아웃은 본질적으로 업무와 관련된 장애 증상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약물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가 노동의 실제적인 적은 일하는 인간의 가치가 떨어지고 인간이 비인간적인 강압 속에서 의미를 상실한 채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가혹한 노동 조건으로 인간을 밀어 넣으려는 사람들과 아무 저항도 없이 그런 속으로 들어가려는 사람 양쪽 모두가 노동에 의한 행복의 가능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여, 우리를 비인간적 노동으로 끌어들이는 사람들에게 인도적으로, 정치적으로 맞서라.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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