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소외된 자의 눈을 통해 보면 종종 보이지 않는 세상의 숨은 면들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나 영화는 종종 이들의 시점으로 세상을 묘사하곤 한다. 영화 ‘예의없는 것들’도 이렇게 이런 인물을 내세워 우리 사는 곳의 부조리를 보여주려 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킬라’(신하균). 그는 킬러다. 밤거리를 배회하며 의뢰받은 사람들을 죽인다. 수시로 경찰에 쫓기며 자신을 숨겨야 하는 운명의 그는 철저히 소외된 사회의 아웃사이더다. 게다가 그는 장애인이기까지 하다. 태어날 때부터 혀가 짧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소통불가의 킬러’. 이 ‘완전한 아웃사이더’가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가 영화 ‘예의없는 것들’이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킬러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어느날 독특한 의뢰가 들어오고 그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져 간다. 칼을 잘 쓴다는 이유로 중국집 직원에서 일약 킬러가 된 ‘킬라’.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만 그에겐 한가지 커다란 명분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세상의 ‘예의없는 것들’을 청소하기 위해서라는 것. 이러한 자기합리화를 기반으로 그는 사회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세상의 ‘예의 없어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처단한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는 그. 피냄새를 없애기 위해 매번 같은 바에 들러 독한 술을 먹고 그곳에서 ‘끈적거리며’ 구애하는 '그녀'(윤지혜)와 자주 마주친다. 무례하지만 말없는 그가 좋다는 ‘그녀’를 ‘킬라’는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재래시장 재개발 건으로 폭리를 취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을 제거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만만치 않은 강적인 이 조직 폭력배들에 의해 ‘킬라’의 삶은 조금씩 꼬여간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것은 ‘코믹 느와르’. 느와르 답게 영화 속에 펼쳐지는 세상은 어둡고 부조리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 속에 코믹함을 담는다. 그 코믹함의 중추는 주인공이 혀가 짧다는 설정. 단순히 말을 안하는 것뿐인데도 ‘소통불가’라는 설정은 영화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한다. 독백으로 처리되는 ‘킬라’의 대사들은 제 3자가 부조리한 사회에 가지는 ‘의아함’으로 가득하다. 비록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만 순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장애인에 가까운 ‘킬라’의 이런 독백이 어두운 주변 인물들과 충돌을 일으키며 기묘한 블랙유머가 발생한다. 신하균은 이런 독특한 캐릭터를 절묘하게 소화해 냈다. 그의 사람 좋은 인상은 ‘킬라’의 순수함을 표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배우는 윤지혜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는 이 세상에서 ‘킬라’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이다. 아웃사이더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끌어안는 그녀의 존재로 인해 영화는 ‘레옹’류의 킬러영화일뿐 아니라 ‘말아톤’,‘맨발의 기봉이’같은 장애영화의 면모까지 지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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