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계열사 인수합병(M&A)에 나서는 상장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몸집을 줄여 경영효율을 높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경기가 회복기로 접어들었을 때 탄력적인 성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4분기에 계열사 등의 인수합병 공시는 유가증권시장 14건, 코스닥시장 13건 등 모두 2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상반기 전체 합병공시 건수(24건)보다도 더 많은 것이다. 코스닥시장은 3개월 동안 합병 건수가 13건으로 상반기 동안의 건수와 같았고 유가증권시장은 3개월 만에 상반기 건수(11건)를 훌쩍 넘어섰다.
최근 계열사 합병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기업의 몸집을 줄여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함으로써 불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STX메탈이 계열사인 STX중공업을 흡수합병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엔진부품과 기자재를 생산하는 STX메탈은 중대형 엔진 생산과 각종 플랜트 엔지니어링 역량을 보유한 STX중공업을 합병해 시너지 효과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같은 날 STX그룹이 STX에너지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의 종합금융그룹인 오릭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에 비춰볼 때 STX메탈과 STX중공업의 합병도 재무구조 개선 계획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동원시스템즈가 계열사인 대한은박지를 흡수합병한 것처럼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시장 대응력을 높이고 앞으로 경기회복 시기에 성장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계열사 합병이 이뤄진다. 지난 5월 동원그룹에 편입된 대한은박지는 8월 법정관리를 마치고 경영정상화를 이뤘다. 동원그룹은 기존 동원시스템즈의 포장 사업부문과 대한은박지의 알루미늄 압연박 사업부문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불황으로 기업들이 산업환경 변화에 민감해지자 계열사 합병을 통해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조용준 신영증권 센터장은 "불경기에 산업 내 통합이 가속화되는 등 구조조정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며 "조직의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함과 동시에 사업 간 연계성이 있어 시너지 효과를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 합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들이 몸집을 키우는 등 성장을 통한 사업 확장에 나서지만 불경기에는 비용통제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며 "두 개의 조직을 합치면 효율적인 비용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계열사 합병이 늘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계열사 합병이 이뤄진다고 반드시 두 회사의 상승 효과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효율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경우도 있어 투자자들은 합병의 배경과 내용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변 연구원은 "경우에 따라 잘나가는 기업이 실적악화 등으로 재무적 한계에 놓인 계열사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합병이 이뤄지기도 한다"며 "합병이 반드시 효율성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사안별로 합병 효과 등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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