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데스크 칼럼] 나라 망치는 기회주의


최근 한일 갈등이 불거지자 과거 김영삼(YS) 대통령의 강성 발언 때문에 일본 도움을 못 받아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며 한국의 자성을 촉구하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왔다. 1995년 11월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다"는 YS가 한 말 탓에 감정이 상한 일본이 2년 뒤 돈을 안 꿔줬다는 분석이다.

팩트(Fact)일까. 그렇지 않다. 일례로 임창렬 전 경제부총리나 김종인 전 경제수석의 회고에 따르면 일본 등 일국의 지원을 막은 것은 한국의 무역자유화와 자본시장 개방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통치를 원한 미국이었다.

거짓말이 유포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의식 근저에 깔린 기회주의가 더 골칫거리다. 기회주의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없이 시류나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잘못된 이론이나 행동을 말한다. 포퓰리즘이 대표적이다.

겉으로는 나라를 위한다며 그럴싸한 언행을 보이지만 역사와 사회, 인간을 꿰뚫는 통찰이 없어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하는 게 기회주의다. 일본이 한국을 외환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었다는 것은 억지다. 백번 양보해서 그렇게 됐다 치자. 국제기구인 IMF가 행사한 경제지배보다 더한 간섭과 수탈이 초래됐을 것이다. 실제로 IMF 구제금융 570억달러 중 100억달러를 넣은 일본은 외환위기 협상과정에서 일본 제품 수입을 제한하던 수입다변화 규제를 없앴다.

후손 위한 양질의 삶 토대 닦아야

정략적인 이유로 한일 갈등을 초래했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공격한 민주통합당의 태도 역시 원칙을 저버린 기회주의 다름 아니다. 한일관계가 시끄러워지니까 그걸 트집잡아 전투 중인 자국 장수를 공격하는 것은 공당의 처신이 아니다. 일본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민주당은 한국편인가 일본편인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반값 대학등록금'공약은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그답지 않은 기회주의적 판단이다. 물론 민주당도 비슷한 주장을 펴왔다. 한국만큼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나라가 없고 대졸실업이 심각한데 대학 학비만 낮추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고졸 취업자도 일정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고 승진도 할 수 있는 사회구조의 변화가 우선이다. 대학을 못 가 그런 혜택을 못 보는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는 뭐라 할 것인가.



원칙이 아닌 길은 가지 말아야 한다. 당장 주린다고 내년 뿌릴 종자를 먹어서는 안 된다. 2012년 대통령 후보들을 비롯, 우리에게는 후손들이 지속 가능한 양질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토대를 튼튼히 닦아야 할 책무가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먹고 잘살자'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천민(賤民) 행태 역시 '노동자 연대'라는 대원칙을 정면으로 깨뜨리는 최악의 기회주의다.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 노조들은 연대의식에 기반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시스템을 이끌어냈고 북구식 성장과 분배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노조는 나누기는커녕 근로소득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에 신음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존재는 그들에게 성가신 '흥부'일 뿐이다. 내 월급 올리고 비정규직인 내 아들 직장세습을 해주면 끝이다.

돈 퍼준다고 공급과잉 자영업 사나

자영업자 대란 경고가 잇따라 나오자 지원 확대와 더불어 창업교육을 잘 시키자는 제언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구매력은 비대해진 자영업 부문을 먹여살리기는커녕 쪼그라들고 있다. 돈을 좀 더 꿔주고 '대박 가게(또는 프랜차이즈)'운운하는 창업 컨설팅을 해주면 한국 경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비중의 두 배가 넘는 자영업자들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창업을 부추겨 돈을 챙기려는 프랜차이즈 업자류, 또는 관련 예산을 더 따내려는 중소기업청 등 일부 공무원들의 노림수다.

이미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한 한국은 점점 더 살기 힘든 나라가 돼가고 있다. OECD 1위 자살률이 방증한다. 우리의 미래를 나락으로 끌고 가는 기회주의를 배격하지 않는다면 먼 훗날 망국(亡國)의 울분을 또 삼켜야 할지 모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