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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짐 체인지] 경제위기보다 이념위기 더 문제…한국판 흑묘백묘 찾아야

<2> 마이너스식 분배 지상주의 벗어나라<br>"부자증세·대기업 때리면 표된다" 정치권 좌클릭 경쟁에 사활 걸어<br>"국회는 포퓰리즘 우리는 선진대책" 정부도 정책 나르시시즘에 빠져<br>색깔논쟁보다 유연한 정책조합으로 경제 전체 파이 키우기부터 나서야

여도 야도 "좌향좌", 황우여(왼쪽 사진) 새누리당 대표와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이 각각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 공약정책점검회의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정치권이 여야 할 것 없이 기업 때리기로 표심을 얻으려 좌편향 이념경쟁을 벌이면서 정작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성장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서울경제DB


건설ㆍ전기업 등에서 오랜 기간 입지를 다져온 중견기업 D사. 이 회사의 경영기획 담당간부 박모씨는 벌써부터 연말만 생각하면 가슴이 막막하다. 매년 4ㆍ4분기면 이듬해 투자ㆍ마케팅 전략을 짜는데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해를 넘겨도 내년 업황을 예측하기 힘들 것 같아 한숨만 쉬고 있다.

박씨가 이렇게 자신감을 못 갖는 것은 부진한 경기흐름 탓이 아니다. 차라리 그러면 거기에 맞춰 보수적으로 전략을 짜면 된다.

그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오락가락하는 정부ㆍ정치권의 정책방향이다. 그는 "건설업은 부동산 규제 방향이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물량에 따라 일희일비하는데 국회에서는 여야끼리, 정부에서는 부처끼리 좌냐 우냐 이념논쟁에 빠져 있으니 업황 예측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경제위기보다 경제민주화나 과도하게 좌클릭돼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여기서 파생하는 줄지은 복지 포퓰리즘과 같은 '이념의 위기'가 더 무섭고 힘들게 한다는 얘기다.

이런 고민은 단순히 건설업만의 딜레마가 아니다. 제조ㆍ서비스업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국가의 정책방향을 참조해 이듬해 경기흐름을 가늠하고 신제품 개발 일정이나 마케팅 기획, 재무전략을 짠다. 그런데 정치권은 물론 최근에는 일부 정부 사이드에서조차 이념공방에 빠져 폴리시믹스(정책조합) 방향을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러니 '투자에 힘쓰라' '고용을 늘리라'고 닦달하는 당국자들의 이야기가 먹혀들 리 만무하다.

경제 전체적인 파이(규모)를 먼저 키워 나눠먹는 것이 아니라 당장 기업을 쥐어짜 파이를 빼먹는 마이너스식 분배지상주의가 극좌의 이념 속에서 득세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 때리기가 좌의 상징으로=문제는 이런 기업인들의 어려움을 정치권이나 정책당국이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규제만 해도 관계당국들은 부자정책이니, 서민정책이니 입씨름하는 여야의 눈치만 보고 있다. 조세정책에 대해서도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기업들ㆍ중산층 이상의 세부담이 과중하다, 감세를 해야 한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입법 추세는 가뜩이나 세부담이 높았던 일부 계층을 표적 삼아 세금을 더 물리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부자와 대기업을 때리면 표가 된다는 일방향의 정치 공학이 난무하는 셈이다.

법인세법만 해도 현재 국회에 2건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현재 22%인 최고세율을 30%로 높여 사실상 대기업 증세를 하는 내용(박원석 통합진보당 의원안)이다. 다른 하나는 대기업 주주 등의 배당소득에 대한 이중과세 조정기준을 더 강화(익금불산입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민주통합당 의원이 제출했다. 소득세법은 7건이 발의돼 있는데 이중 정부안을 제외한 의원입법은 대부분 부자증세를 골자로 삼고 있다.



대기업 규제 일색인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벌써 9건이 국회에 올라온 상황. 이들을 포함해 이른바 경제민주화를 골자로 한 법안들은 이미 발의된 것과 발의가 예정됐거나 논의되고 있는 것을 합쳐 줄잡아 100건을 넘어섰다.

반면 기업 규제 완화 등을 담은 경제활성화 법안은 가물에 콩 나듯 한다. 특히 내수활성화를 위해 서비스업 육성이 절실하다고 여야가 입을 모으면서도 정작 이를 위한 입법은 뒷전이다. 그나마 정부가 지난 18대 국회 때부터 적극 추진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결국 폐기됐다가 최근 19대 국회에서 다시 제출됐는데 여야는 시큰둥하다.

◇미래 동력을 위한 유연한 폴리시믹스 절실=정책방향의 말과 실천이 다르니 정부가 모처럼 시장의 애로사항을 개선하겠다며 정책을 내놓거나 예산을 풀어도 시장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조차는 "경기를 살리겠다고 과감하게 규제를 풀려고 해도 다른 부처나 여야의 견제로 뒤집히기 쉬워 아이디어를 올리기가 조심스러워진다"고 한탄했다. 이어 "오랜 세월 공직에 몸담았지만 요즘처럼 정책방향을 놓고 자신감을 잃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넋두리도 했다.

물론 정책적 유연성을 잃기는 국회뿐 아니라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가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데 정부는 적극적 재정지출이나 서민ㆍ중소기업 지원을 요구하는 여야의 목소리를 좌파적 포퓰리즘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새누리당의 한 당료는 "요즘 재정부의 발언 수위를 보면 국회가 추진하는 복지나 재정사업은 불요불급한 포퓰리즘 대책이고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ㆍ재정사업은 불가피한 선진정책이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고 꼬집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정책의 이념색깔을 놓고 입씨름하지 말고 한국판 '흑묘백묘'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주문하고 있다. 흑묘백묘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이념의 색깔에 관계없이 시장경제제도를 유연하게 받아들였던 중국 개방개혁정책의 모토로 꼽힌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가 예상보다 더 나빠지고 있어 성장세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이고 유연한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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